영유아 예방접종 누락자 20% '부모 신념' 때문..."지역사회 집단면역 깨뜨려 공중보건 위협"

[라포르시안] 최근 백신접종이나 항생제 사용을 지양하고 자연치유를 표방한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라는 육아카페가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카페에서는 회원들끼리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료법을 신뢰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해 왔다. 그러나 안아키 카페의 방식대로 아토피을 앓는 아이에게 자연치유를 하다가 증세가 악화된 아동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한 시민단체가 아동학대를 이유로 안아키 카페를 경찰에 신고했다. "자연치유를 빙자해 사실상 아동에게 적절한 의료적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아동학대 행위로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안아키 카페 뿐만 아니라 현대의학을 불신하고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자연주의 치료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신념을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전파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에게도 적용해 질병이 생겼는데 학대에 가까운 '의학적 방임'을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백신접종을 거부함으로써 집단면역(herd immunity) 을 깨뜨리는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미 지역사회에서 퇴치된 홍역을 또다시 소환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영국의 웨이크 필드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MMR 백신이 자폐증과 관련 있다는 논문을 영국의 저명한 학술지인 '랜싯(Lancet)'에 게재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MMR 백신에 대한 우려와 접종 거부가 확산된 바 있다.

하지만 백신과 자폐증 발생간 연관성이 없다는 게 확인되고 이후 해당 논문이 취소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영국 등 유의 많은 부모가 MMR 접종을 거부해 홍역 유행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영국의학저널(BMJ) 'MMR백신과 자폐증에 관한 연구는 정교한 사기' 공식입장문 바로 가기>

지난 2015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 방문자를 중심으로 홍역 유행이 발생한 바 있다. 미국 보건당국의 조사결과, 당시 홍역 환자의 상당수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예방접종을 거부한 미접종자로 확인됐다.

올해 4월부터 미네소타주의 소말리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홍역이 유행하고 있다. 소말리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백신접종과 자폐증 우려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면서 MMR 백신 접종률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2014년 기준으로 미네소타주 소말리아계 미국인의 MMR 접종률은 42%였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루마니아와 이탈리아 중심으로 홍역이 크게 유행했다. 유럽질병관리본부(ECDC)에 따르면 올해 4월 19일 기준으로 이탈리아에서 총 1,03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고, 이들 가운데 88%는 백신 미접종자였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2016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홍역 환자 5,200명이 발생해 이 중 24명이 사망했다. 루마니아에서는 95% 이상 유지되던 MMR 접종률이 2010년 이후 계속 감소해 2015년에는 MMR 1차 접종률이 86%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예방접종 기피, 퇴치된 감염병 재유행 가져올 수 있어"

한국은 지난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퇴치 국가'로 인증을 받았지만 언제라도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백신접종률이 떨어지면서 집단면역이 깨져 홍역 재유행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의외로 부모의 신념 때문에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이 2012년 출생한 어린이가 생후 3년까지 예방접종한 전체 기록(예방접종정보시스템)을 바탕으로 연령별, 백신별, 지역별 예방접종률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우리나라 어린이의 예방접종률이 첫돌 이전은 94.3%, 만 세살 이전은 88.3% 등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결과에서 눈에 띄는 결과는 2012년 출생 이후 접종력이 한 건도 없는 접종누락자 1,870명의 미접종 이유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작년 11월 발표한 ‘전국 예방접종률 통계’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출생 이후 접종력이 한 건도 없는 접종누락자 1,870명의 미접종 사유에서 '부모의 신념'(241명)이 19.2%로 파악됐다. 해외거주나 접종할 시간을 내기 힘든 이유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의도적으로 예방접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를 구체적으로 보면 부모의 신념으로 접종누락자가 된 아동 241명 중 '예방접종 이상반응 우려'로 인해 접종을 기피한 경우가 137명에 달했다.

'예방접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으로 기피가 70명, '예방접종에 대한 개인적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로 인한 기피가 23명, '예방접종 단순 미시행' 11명 등이었다.

예전부터 부모의 신념에 따른 백신 거부 현상은 '집단면역'을 깨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세계 각국의 공중보건 정책에서 집단면역의 효과를 얻기 위해 일정 수준의 예방접종률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특히 영유아 시기에 적기에 완전접종을 하는 건 개인의 질병 예방 효과는 물론 사회적으로 '집단면역' 형성이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예방접종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최근 이슈가 된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료법 맹신에 따른 예방접종 기피는 낮은 접종률과 감염병의 재유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표 출처: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해 제출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 보고서.
표 출처: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해 제출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 보고서.

그런데 예방접종에 대해서 비슷한 신념이나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에 모여서 사는 경향이 있고, 이런 이유로 해당 지역사회의 접종률을 낮춰 집단면역을 깨뜨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예방접종에 대해서 비슷한 신념 및 태도를 갖는 보호자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에 모여서 사는 경향이 있었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번 내리고 나면 쉽게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에게는 전문가인 의사의 설득도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접종 아동의 보호자 70.9%는 예방접종을 받기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의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며 "일단 부모가 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의사들이 그 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WHO가 지난 2015년 펴낸 `백신 기피에 대한 WHO의 권고'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들에게 백신을 제때 접종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부모들 때문에 전세계 각국에서 집단면역 체계에 허점이 생기고, 이로 인해 매년 약 150만 명의 어린이가 질병에 걸려 숨지고 있다.

백신접종 거부 현상은 예방접종을 통해 감염병 유행 위험을 크게 낮춘 것에 대한 효과는 인식하지 못하고 어쩌다가 발생하는 백신접종 부작용 사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환종 교수(소아감염분과)는 "예방접종은 비용 대비 편익 면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공중보건 중재의 수단으로 그간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 가능한 많은 질병들의 발생은 현저하게 감소되는 등 인류의 건강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며 "예방접종을 통한 감염병의 발생 감소로 인해 해당 감염병의 위험은 잘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예방접종의 부작용 등이 더 부각됨으로써 예방접종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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