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곤란 30대 여승객, 의료진 승객이 살려 화제
선의의 응급의료행위가 자칫 의료분쟁 불러 올수도…의사 10명중 4명은 '주춤'

▲ 평균 1만km이상 고도를 유지하는 국제선 기내에서는 낮은 기압과 습도 등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사진 출처 : 대한항공 홈페이지>

#. 지난 7일 호주 브리즈번으로 향하던 대항항공 KE123편. 이날 오후 7시 3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고도 1만미터 이상을 유지하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항을 출발해 2시간쯤 지난 오후 9시 55분경 한국 국적의 여자 승객 L씨가 갑자기 쓰러져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승무원이 발견했다. 발견 당시 L씨는 호흡과 맥박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체온까지 빠르게 떨어지는 상태였다. 해당 객실 승무원은 즉각 승객을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눕히고 응급장비를 조달하는 한편 기내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사호출'(Doctor Call) 방송을 시작했다.

기내 닥터콜이 나간 후 곧바로 전직 간호사였던 호주 국적의 남성 승객 K씨가 달려와 심폐소생술 및 인공호흡을 하며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공호흡을 시작한지 5분여 만에 L씨의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의사로 재직 중인 K씨도 달려와 승객의 상태를 진찰하며 혈압과 체온 등을 지속적으로 체크했다. K씨는 여자 승객의 혈압이 낮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기에 회항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응급조치를 시작한지 20분 후인 오후 10시 15분경 승객 L씨가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건강한 상태로 목적지인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해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7일 대한항공 국제선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기내에서 생명을 잃을 뻔한 30대 여성이 ‘닥터콜’을 받고 발 빠르게 대응한 의사와 전직 간호사 승객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위의 경우처럼 높은 고도를 유지하는 항공기 내에서는 낮은 기압과 습도 등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여행의학회에 따르면 미연방항공청(FAA)이 미국 내 5개 항공사의 자료를 수집해 기내 응급환자의 규모를 조사한 결과, 연간 1,132명, 하루 평균 3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기내 응급환자 발생률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A항공의료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기내 응급상황이 연간 2,000~3,000여건씩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기내 응급상황 발생시 의사가 닥터콜에 선뜻 응하기에는 의료분쟁 등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미항공우주의학협회에서 회원 2,3000명을 대상으로 닥터콜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850명의 응답자 중 533명(62.7%)만이 진료에 응했다고 답했다.

▲ 항공기 기내<사진 출처 : 대한항공 홈페이지>

닥터콜에 응하지 않은 의사들은 대부분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꼽았고, 전문 진료분야가 아니거나 음주 상태로 진료가 가능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꼽았다.

대한여행의학회 조경환 회장(고려대의대 가정의학과)은 “응급환자 발생에 따른 닥터콜 요청 시 적극 도와야 하는 것이 의료인의 윤리”라며 “그러나 자신의 진료과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기내에 비치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부정적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닥터콜에 응하는데 있어 애로사항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내 닥터콜 괜히 응했다가 의료분쟁에라도 휘말리면…"미국에서는 지난 1998년 닥터콜에 대한 의료진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Aviation Medical Assistance Act'를 제정하고 응급환자 진료 후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에  고의성이 없고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형사적 책임을 면제시켜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8년 일반인이나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실시한 응급의료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면책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면토록 한 ‘개정 응급의료법(일명 착한 사마리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2011년 8월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면토록 개정한 바 있다.

조경환 회장은 “기내 응급환자의 결과가 어떻든지 의료인의 의도가 선했다면 자발적인 봉사임을 인정해줘야 한다”며 “기내의 상비약이나 의료기기를 보면 응급환자에게 유해를 가할 도구는 없어 고의로 악결과를 가져올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도 “신기하게도 기내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탑승객 중 의료 종사자가 있었다”며 “그들은 매번 주저하지 않고 닥터콜에 응해 기내 응급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의료인이 닥터콜에 소극적으로 응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선의의 의도로 응급의료행위를 한 것이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하다.

조 회장은 “사마리안법에 이해당사자간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의료분쟁은 의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항공회사와의 관계도 되짚어봐야 한다. 응급상황으로 인한 회항 결정에 대해 의사는 소견만 제시할 뿐 모든 결정은 항공사 내 의료센터가 결정하기 때문에 의료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분쟁에 대비한 제도의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조 회장은 “기내 응급상황시 의료인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의료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의료분쟁이 생겼을 때 사회적으로 중재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세부분과를 만들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