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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씌워진 ‘분만’이란 이름의 원죄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7.05.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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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지난달 29일 전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분만 중 발생한 자궁내 태아 사망사고에 대해서 의사에게 형사책임까지 지운 법원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앞서부터 분만 과정에서의 의료사고와 법적분쟁에 따른 부담감, 저수가 등으로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는 가속화 돼 왔다. 여기에 분만 중 발생한 자궁내 태아 사망사고에 대해서 의사에게 형사책임까지 묻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국가가 산부인과 의사들을 분만 현장에서 내쫓고 있다”고 항의한다.

이미 한국에서 '분만'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원죄가 됐다. 분만과 관련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산과 무과실 보상)' 때문이다. 2013년 4월부터 시행된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서 피해 보상(최대 3,000만원)을 하는 제도다. 피해보상금 재원은 국가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개설자가 각각 7대 3의 비율로 분담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오로지 분만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 없거나 과실을 입증할 수 없는 분만사고에 대해서도 보상재원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 없어도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으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적립금은 총 27억5,832만원이다. 이 중 국가출연금이 22억6,309만원, 보건의료기관 분담금이 4억9,523만원이다.

산부인과 개설자에게 부과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은 얼마나 될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2016년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 부과·징수 공고'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개설자 591명을 대상으로 약 4억8450만원이 부과됐다. 보상재원 분담금은 2015년 총 분만건수에 분만단가(1,160.94원)를 곱해 산정했다. 분만 한 건당 약 1,160원의 보상재원 분담금이 부과된 것이다.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을 할 때마다 1,160원의 '원죄 값'을 치르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우리보다 앞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분만 기피와 산부인과 의사 감소 현상을 겪은 일본은 2006년 이후 산부인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관련 예산도 확보했다. 특히 산부인과 무과실 보상제도를 도입하고 약 3,000억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당연히 무과실 보상제도의 재원 마련은 100% 국가 책임이다. 대만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자 2016년 7월부터 산과 무과실 보상 비용을 정부가 100% 부담하는 법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이나 대만과 달리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원죄처럼 떠안고 있는 동안  출산 인프라는 붕괴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분만을 받는 요양기관 수는 2007년 1,027개소에서 2015년에는 620개소로 줄었다.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분만취약지역는 2016년 말 기준으로 34개에 달한다.

분만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 하락은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 증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면서 고령산모는 증가하는 데 분만 인프라 붕괴로 '고위험 임신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남의 한 지역에서는 산모가 분만병원을 찾아 운전대를 잡고 직접 30km 거리에 있는 분만병원 찾아 이동하던 중 진통이 심해져 119구급대에 긴급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사는 지역에 따라 목숨을 걸고 출산을 해야 하는 열악한 분만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산부인과가 분만을 기피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분만실을 운영할 경우 24시간 정상운영에 따른 의료진의 업무부담감은 높은 반면 분만 관련 의료수가가 낮다보니 운영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 2월 작성한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만비용은 일본의 1/5, 독일·프랑스 등의 약 1/3 수준이다.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가장 괴롭히는 건 의료소송 부담이다. 한 산부인과 여의사는 "분만 중에 산모에게 출혈이 발생하거나 태아에게 이상이 있을 것으로 예견될 때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엇보다 사고 이후에 발생할 법적 다툼에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어 분만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미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분만 관련 의료분쟁 부담의 우려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여기에 법원이 산부인과 영역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생길 수 있는 자궁내 태아 사망을 이유로 분만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분만을 대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안과 우려는 공포로 변했다.

이런 의료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분만 인프라 붕괴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질 게 분명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만 현장 이탈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 피해는 산모에게 돌아간다. 산부인과 의사와 산모 모두 목숨 걸고 출산하는 시대가 바로 눈앞이다. 안전한 분만환경을 보장해야 할 국가가 분만 인프라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분만 대란'을 피하려면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만 의료행위에 씌운 원죄를 국가가 나서 걷어내야 한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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