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경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라포르시안] 환자는 물론 심지어 의사에게조차 낯선 질환이 있다. 바로 ‘연부조직육종’이다. 연부조직육종은 암세포가 지방, 근육, 신경, 섬유상 조직, 혈관 등의 연부조직에 형성되는 악성종양을 총칭한다. 그 중 ‘지방육종’이 가장 흔하다. 진행성 전이성 연부조직육종의 경우 그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의료적 수요 충족이 절실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1월 전이성 지방육종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확인한 단일요법 치료제가 국내에 등장했다. 전이성 유방암치료제 ‘할라벤(성분 에리불린메실산염)’이 그것이다. 할라벤은 전이성 지방육종 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한 임상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지방육종 적응증을 추가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수정 교수를 만나 새 지방육종 치료옵션 등장의 의미와 국내 연부조직육종 치료 현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이수정 교수가 외래진료를 보고 있는 칠곡경북대학교병원에서 진행했다.

 - 연부조직육종은 환자도, 의사에게도 낯선 질병이다. 어떤 질환인가.

“연부조직육종은 전체 암 중 1% 정도로, 희귀암에 속한다.  지방을 비롯해 뼈, 근육 등 인체 모든 부위에 생길 수 있어 아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각 발생부위별 발병률은 더욱 낮다. 그러다 보니 각 아형에 대한 표준치료를 확립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유방암처럼 환자가 많은 질환은 표준치료가 정립되어 있고, 매년 많은 신약이 쏟아져 나온다. 반면 희귀암인 연부조직육종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그에 따른 각각의 특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신약 개발이 더디고 표준화된 치료방침의 확립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연부조직육종의 국내 발생 현황은 어떤가.
 
“지방육종은 연부조직육종 중 가장 흔한 질환으로, 연부조직육종의 약 20%에 이른다. 지방육종은 30~40대 젊은 연령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러한 비율을 국내 환자 대상으로 따져보면 연간 약 120명의 지방육종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중 3차 이상의 전이성 지방육종 환자는 약 20명 정도로 추정된다.”

- 전이성 연부조직육종의 표준치료와 국내 치료옵션은.

“연부조직육종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환자들이 사회 생활을 무리 없이 유지할 정도로 신체조건을 갖고 있더라도 추가적인 치료 옵션이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부조직육종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각 아형에 따른 표준 항암치료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대게 독소루비신(Doxorubicin)을 포함한 요법을 표준치료로 쓰고 있다. 이 외에 젬시타빈(Gemcitabine), 도세탁셀(Docetaxel) 병용요법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후 진행된 환자의 경우 추가적인 항암제 선택에 어려움이 있다. 

전이성 연부조직육종은 무진행 생존기간(PFS)이 짧아 기존 치료법으로 치료를 하더라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율이 40~60%나 된다. 타 질환 대비 재발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실제 쓸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상당히 적은 상황이다. 연부조직육종은 희귀암으로 분류되어 주요 암 대비 혜택이나 국가적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 최근 전이성 유방암치료제 ‘할라벤'이 연부조직육종 중 하나인 지방육종을 적응증으로 추가 획득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진행성 연부조직육종의 치료 옵션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2012년 표적치료제인 파조파닙(Pazopznib)이 등장해 진행성 연부조직육종 환자의 무진행 생존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치료 옵션을 추가했지만, 지방육종은 제외됐다. 지방육종은 전체 연부조직육종 환자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소외된 질환이었다. 할라벤이 전이성 지방육종에 대한 적응증을 확보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옵션을 제공하고 무진행 생존기간 연장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지방육종은 재발이 잦으면서도 서서히 자라는 병이다. 그러다 보니 빨리 자라는 세포를 공격하는 항암제는 잘 듣지 않는 편이고, 후복막과 같이 발견이 어려운 부위에 암이 생긴 환자는 수술을 해도 완벽한 절제가 어렵다. 적게는 2~3번, 많게는 10번 이상 수술을 반복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장 유착 등 부작용도 심하다. 이는 환자들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었는데 할라벤이 등장함으로써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 전이성 암 치료에서 단일요법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연부조직육종, 유방암뿐만 아니라 다른 암종에서도 환자 삶의 질 향상은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되고 있다. 특히 전이성 암 환자들에게 삶의 질 향상은 더욱 중요하다. 전이 암 단계에서의 고식적 항암치료는 생존기간 연장과 삶의 질 향상이 목표다. 단일요법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전이성 암 환자에게 강력한 항암치료를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한가지 약제만 사용하는 단일요법을 사용하는 추세다. 여러 약제를 사용하더라도 한번에 한 가지 약제를 순차적으로 차례차례 사용한다. 단일요법으로 치료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약제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은 덜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할라벤 단일요법은 최근 치료 트렌드에 적합한 약제라고 보고 있다.”

- 할라벤이 적응증을 추가한 이후 임상에서 환자에게 사용한 적이 있나. 

지난 1월 할라벤이 지방육종으로 적응증을 추가한 이후 2명의 환자에게 사용해 본 적이 있다. 지방육종은 사지 말단(팔, 다리)에 주로 생기지만 후복막에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고, 수술을 하더라도 완전한 절제가 어렵다. 또 절제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진료한 두 명의 환자 모두 40대 여성으로, 후복막에 지방육종이 발견됐다. 표준치료로 독소루비신(Doxorubicin), 탁산(Taxane)계열 약물을 사용해 항암치료를 진행했으나 병이 더 진행됐다. 두번째로 젬시타빈(Gemcitabine), 도세탁셀(Docetaxel) 병용요법을 사용했다. 

예전에는 그 이후 더 쓸 수 있는 약제 자체가 없었지만 현재는 할라벤이라는 옵션이 생김으로써 환자들에게 생존 기간 연장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할라벤으로 치료받고 생존기간을 늘리는 동안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독소루비신이나 탁산계열 약제는 독한 항암제 중 하나다. 독소루비신은 드물게 심장부전을 일으키며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최대 10%다. 탁산계 약물의 경우 부작용으로 전신 몸살이나 점막염이 발생할 수 있고 20kg까지 몸이 붓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해 할라벤은 부작용이 적어 환자들이 치료를 잘 견디고 있다.”

-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써 갖는 할라벤의 장점이 지방육종 환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나.

“할라벤은 투약이 간편하고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덜해 환자들이 치료 중에도 일생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진료한 지방육종 환자들도 본인의 일상생활을 지키면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더 오랜 기간 지켜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보통 항암치료 시 2.5~3개월 간격으로 치료 상황을 검사한다. 검진 후 상태가 악화되면 치료법을 바꾸는데 현재 6개월 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이성 지방육종 환자들이 받았던 이전 단계의 항암치료인 독소루비신이나 도세탁셀과 같은 항암제에 비해 환자가 직접 느끼는 부작용이 적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하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할라벤의 장점이다.”

- 연부조직육종 관련해 진행 중인 임상연구는.

“현재 칠곡 경북대학교병원에서는 1상 연구를 진행 중이며, 연부조직육종이 포함되어 치료를 시행할 예정이다. 또 다른 연구로는 기초 생리학 및 정형외과 연구진과 함께 진행 중인 기초연구가 있다. 환자들의 수술 조직을 연구해 실제 육종이 전이되는 매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 전이성 연부조직육종 치료 분야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희귀암 환자들에게 할라벤이라는 치료제가 추가됐다는 건 새로운 희망이 하나 더 생긴 것과 같다. 효과 좋은 약제에 보험혜택이 주어져야 환자들이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할라벤과 같은 약제가 있어도 여건 상 못쓰는 환자도 있다. 실제 지방육종 환자가 질환이 전이, 악화되어 수술이 어려운 상황인데 약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물을 때 의사로써 상당히 안타깝다. 희귀암 일수록 정부에서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보험 혜택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희귀암은 환자 수가 적어 정부 정책에 소외되기 쉽고 환자 단체도 거의 없다. 정부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재원을 마련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유병률이 높은 질환을 위주로 보장성을 확대한다. 제약사들도 신약을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기 때문에 희귀암 약제를 개발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자이가 연부조직육종과 같은 희귀암 분야에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효과 있는 약제를 발견해 환자들에게 적용하기까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 지방 암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국내 의료체계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국가보험체계라 구조상 전국적으로 유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항암치료의 경우 일부 신약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표준 치료법에 따라 처방을 하게 된다. 많은 분들이 암 치료는 꼭 서울에 가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멀리 다른 지역에 가서 하는 것은 체력 낭비라고 말하고 싶다. 각 지역의 암센터에서 표준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항암치료를 하면 여러 부작용 때문에 먼 거리를 왔다갔다하기 쉽지 않다. 신약 임상 참여를 근거로 서울로 가기 원하는 환자도 있는데, 실제 글로벌 제약사에서 임상을 진행할 경우 서울에서만 진행하지는 않는다. 서울과 각 지역에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지정해 진행한다. 또 임상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적절한 시스템과 인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경북대학교 병원은 이미 그런 조건을 잘 갖춘 검증된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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