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협회 "의료분쟁 사건 형사처벌한 사법부 잘못된 판결·제도 바로 잡아야"

[라포르시안] 분만 과정에서의 의료사고와 법적분쟁에 따른 부담감, 저수가 등으로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분만 중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 의사에게 형사책임까지 묻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이런 일이 잇따르면서 의사 사회 전체가 분만인프라 붕괴라는 재앙적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태아를 살리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 밤잠을 설치며 20시간 가까이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은 분만현장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돼 의료분쟁사건을 형사 사건화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좁은 안목이 그대로 드러난 한국판 오노 사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6년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오노병원 의사 체포 사건'은 전치태반 유착에 의한 과다 출혈로 발생한 산모 사망을 이유로  오노병원의 의사를 경찰이 긴급체포하고 징역 1년을 구형한 일을 말한다.

당시 일본 산부인과학회, 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계 전체가 처벌의 부당함을 호소한 끝에 오노병원 의사는 2년 5개월 뒤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관련 기사: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 떠올리게 한 법원의 판결>

의원협회는 "오노병원 사건은 의료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법부에 경종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며 의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의료사고는 생길 수 있음을 알린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자궁내 태아사망 사건도 분만실에서 20여 시간에 달하는 진통으로 인한 산모의 탈진이 염려돼 진통 1기에 태아 모니터링 기구를 빼고 산모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사이 불행하게 발생한 것으로, 모니터링을 못하고 있던 사이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밤잠을 설치며 산모의 고통을 함께한 의사를 흉악범인양 실형선고한 판결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이 분만 인프라 붕괴를 가속화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원협회는 "분만 중 사고는 언제든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있고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궁 내 태아사망을 이유로 의사를 범죄자로 만든다면 이를 각오하면서도 자연분만을 수행할 의사는 대한민국에서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국가가 산부인과 의사들을 분만 현장에서 내쫓는 이러한 일을 반복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지금도 저출산 문제로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도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 부재는 대한민국을 태아사망과 모성사망률에서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재앙적 상황으로 만들 것"이라며 "잘못된 판결과 제도는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고, 그 시기가 늦어지면 대한민국의 분만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의료분쟁 부담과 출산 관련 저수가 정책의 영향으로 전국의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관련 기사: 복지부만 빼고 다 안다…분만 인프라 붕괴를 멈추기엔 너무 늦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분만을 받는 요양기관 수는 2007년 1,027개소에서 2015년에는 620개소로 줄었다.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분만취약지역는 2016년 말 기준으로 34개에 달한다.

분만 인프라 붕괴로 인한 접근성 하락은 최근의 고령 산모를 포함한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 증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의원협회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낮은 분만수가에도 불구하고 두 생명을 동시에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분만을 위해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왔다"며 "그러나 천문학적인 배상책임과 불가항력적 사고까지도 형사책임을 묻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는 현실이 지속되면서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현장을 떠났다. 지난 10년 동안 50% 이상의 분만 의료기관이 폐업했고 46개 시군구 지역에는 아예 분만 의료기관이 없어 산모들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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