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분만 중 의료과실 관련 한국·일본 법원의 상이한 판단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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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 2014년 11월, 남편을 따라 인천에 머물던 독일인 A(37)씨가 인천의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분만을 앞두고 있다. B씨는 장시간 진통 중 무통주사(경막외마취)를 맞았다. 그런데 무통주사를 맞은 후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수차례 급격하게 떨어지는 증상이 발생했다. 결국 심정지로 태아가 숨졌다.

당시 사건을 전한 지역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산모 A씨는 몇 개월 뒤 분만을 담당했던 의사 B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B씨가 분만 의료행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는지를 살폈다.

이를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에 의료감정을 의뢰했고, 독일의 산부인과 전문 의료진에게도 의료감정을 의뢰했다고 한다. 양 쪽의 의료감정 결과가 모두 분만의사 B씨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왔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B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달 7일, 인천지방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산부인과 의사 B씨가 1시간 30분가량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검사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금고 8월을 선고했다.

분만 중 발생한 태아 사망 등의 의료사고 사건에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판결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형사적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하고 구속형을 선고한 경우는 드물었다.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법원의 판결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분만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자궁내 태아사망의 책임을 물어 산부인과 의사에게 구속형을 내릴 경우 분만기피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련 기사: 분만 중 태아 사망에 의사 구속형…“분만 인프라 붕괴 부추기는 판결”>

산부인과의사회는 "분만 중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산부인과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자궁내 태아사망을 사유로 태아의 분만을 돕던 의사를 마치 살인범으로 낙인찍어 교도소에 구속한다면 대한민국의 산부인과의사는 전과자가 되어버리고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만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태아의 심박동이 떨어지는 상태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힘든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분만 중 산모가 무통주사를 맞으면 태아의 심장박동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복부에 태아 심장박동 감시장치를 달고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심장박동 감시장치를 달면 산모가 움직이지 못하고 자세를 고정한채 있었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다.

의사회는 "분만과정 총 20시간 중 산모가 많이 힘들어해 단지 1시간 30분 동안 태아 모니터링을 할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그 사이 태아사망이 일어났다"며 ""약 1시간여 남짓 동안 산모가 불편해 태아 심박수 모니터링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했다는 게 감옥까지 갈 사유라면 분만과정에서 제왕절개을 하지 않고 그 어렵고 위험한 진통관리를 할 의사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분만 관련 낮은 의료수가에 의료분쟁 부담, 그리고 분만을 기피하게끔 만드는 각종 정책과 법적인 규제가 가해진다면 우리나라의 분만 인프라 붕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오노병원 전경.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오노병원 전경.

분만 중 의료과실 혐의로 체포된 일본 산부인과 의사, 법원 판결은 '무죄'

산부인과의사회의 우려를 보면서 법원의 이번 판결과 겹치는 사건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출산과 분만 인프라 붕괴를 겪은 일본에서 2006년 발생한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 체포 사건’이다.

'오노병원 의사 체포 사건’은 일본에서 왜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만기피가 심화됐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 일본 후쿠시마 현립 오노병원의 산부인과 의사 카이씨는 2004년 12월 17일 산전 검사를 통해 전치태반 진단을 받은 한 산모의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 전 카이씨는 그 산모에게 전치태반에 따른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가급적 대학병원에서 분만 할 것을 추천했다. 그러나 산모는 "대학병원이 너무 멀어 불편하다“며 오노병원에서 출산을 희망했고, 결국 카이씨가 제왕절개 수술을 맡게 됐다.

카이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시작한 지 11분만에 체중 3kg의 여아를 성공적으로 분만했다. 그리고 곧바로 산모의 자궁 속에 남아 있는 태반 박리를 시도했다.

우려했던 대로 태반 박리 과정에서 산모가 질 출혈을 했다. 박리 후 자궁 수축이나 압박 등으로 지혈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카이씨는 태반 박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나 출혈이 더 심해지고 환자의 혈압이 점점 떨어졌다. 긴급 수혈을 하면서 3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결국 자궁을 적출했다. 자궁 적출을 완료하고 30분쯤 지난 뒤 산모의 혈압이 뚝 떨어졌고, 다급하게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1시간 뒤 산모가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자 일본 언론들은 후쿠시마현 의료사고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등을 근거로 "산부인과 의사가 의료 과오를 저질렀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산모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1년여가 지난 2006년 2월 18일 후쿠시마현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카이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와 원인불명의 죽음에 대해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한 관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일본 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의사회 등은 경찰이 카이씨를 체포하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이들이 주장한 내용은 지금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주장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이들 단체는 “태반유착은 수술 전 진단이 매우 어렵고, 치료 난이도가 가장 높은 사례이며 상당한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도 대응이 매우 곤란하다"며 "또한 이번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 부족이라는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참아가며 헌신한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성토했다.

“이런 사례로 의사를 체포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료, 특히 지역의 산부인과 의료를 붕괴시킬 것이다. 수술 치료 결과에 따라서 형사 책임이 추궁된다면 앞으로 의료 현장에서 수술을 기피하는 움직임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쏟아졌다.

그러나 카이씨는 2006년 3월 10일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검찰은 “산모의 대량 출혈은 예견할 수 있는 것이고, 무리하게 태반을 박리한 것이 잘못이었다”며 "산모는 의사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마취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카이씨에게 징역 1년, 벌금 10만엔을 구형했다.

2008년 8월, 일본 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 카이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관련 기사: 일본 ‘오노병원 의사 체포 사건’을 보라!>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이유는 인천지방법원이 의사 B씨에게 금고 8월을 선고하면서 내린 판단과 대조를 이룬다.

일본 법원은 "검찰의 주장은 의학 서적의 일부 견해에 의존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 그러한 견해가 일반적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며 “검찰은 또 태반 박리의 지속적인 위험·환자 사망의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에게 태반 박리 중지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료 행위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의료행위를 중지하는 의무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검찰은 해당 의료행위가 위험하다는 입증 외에 해당 의료행위를 중지하지 않을 경우의 위험을 밝히고 더 나은 의료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일본 오노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약 4년 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의 한 산부인과병원 의사는 자궁내 태아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2년 4개월 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8개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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