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의료계는 불법 리베이트 사건으로 얼룩졌다. 하루가 멀다고 어느 제약사에서 얼마의 리베이트를 몇 명의 의사들에게 제공하다 적발됐다는 뉴스가 터져 나온다.  의약품 리베이트 관련 뉴스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비록 그 정도는 다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리베이트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의 리베이트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2010년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리베이트 쌍벌제 때문이다. 말 그대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는 물론 받은 의료인도 함께 처벌하는 법규정이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 관계자가 구속된 것은 물론 리베이를 받은 의사 수 백 명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행정처분까지 각오해야 한다.

의사사회는 난리가 났다.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 급기야 대한의사협회는 자발적으로 리베이트 근절 선언을 했다. 더 이상 리베이트를 받지도 말고, 제약사도 의사에게 제공하지 말라고 선언했다. 추후 불법 리베이트를 받다가 적발된 의사회원은 엄격한 자체 윤리규정을 적용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다.

이런 자정선언과 함께 리베이트가 불합리한 의료제도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제도개선이 되지 않는 한 리베이트가 근절될 수 없다며 정부를 향해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의료계가 요구한 제도개선은 의료기관의 경영난을 부추기는 저수가를 적정수가로 올리고,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복제약의 보험약가를 낮추라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이 리베이트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비난도 쏟아냈다. 신약개발은 제쳐두고 복제약 개발과 리베이트 중심의 영업에 몰두한 제약업계도 비난의 표적이 됐다.

지금 여기서 의료계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몇 가지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우선 리베이트가 어떤 측면에서 의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의료계는 리베이트 사건이 불거지면서 의사사회가 비윤리적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낸다. 그런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는 유독 의사에게 완벽에 가까운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비윤리적 집단으로 매도당한다는 불만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것은 바로 의사의 직업전문성과 신뢰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의료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는 의학적 지식이나 약에 대해 잘 모른다.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면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 한다. 여기에는 고도의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직업인으로서 의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런데 만일 의사가 처방하는 약에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한 리베이트가 얽혀 있다고 생각하면 의료행위에 대한 의심이 파고든다. 의사의 직업전문성과 그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 리베이트가 근절돼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다른 측면에서 따져봐야 할 것은 리베이트가 과연 ‘절대악’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그런 성격의 리베이트도 많다. 제약사의 법인카드를 사용해 고급시계와 비싼 가전제품을 사고, 해외여행비도 결제한 행위는 불법 리베이트로서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제약사가 자사의 신제품을 홍보하거나 새로운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편익마저 불법 리베이트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인 대가성이나 위법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것만으로 불법 리베이트, 즉 ‘뇌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이 합당한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따져봐야 한다. 본디 리베이트란 판매자가 지급받은 대금의 일부를 사례금이나 보상금의 형식으로 되돌려주는 정상적인 상행위의 의미다. 리베이트를 받아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횡령이나 배임죄를 적용받는게 타당하다. 그러나 자영업자인 개원의에겐 그것조차 적용하기 애매하다. 그래서 포괄적으로 이것을 ‘뇌물’로 규정하고, 비윤리적 행위를 단죄한다는 의미도 덮어 쓰였다.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였다는 괘씸죄가 더해진다. 극단적으로는 도덕적인 단죄로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따져 볼 사안은 리베이트가 정말로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의료계는 리베이트가 저수가와 잘못된 약가정책에서 파생된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저수가를 유지하고자 반대급부로 의사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존해 주는 차원에서 리베이트를 묵인해왔다는 인식도 있다. 이것은 합당한 주장인가. 비윤리적이란 비난여론을 회피하기 위한  작위적인 변명은 아닌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런 점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박리다매’와 ‘3분진료’다.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건강보험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동네의원은 최소한 하루 평균 50~6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경영을 유지할 수 있다. 개원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 병원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해 인테리어와 시설을 잘 갖춰야 한다.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 건물을 임대하고, 또 수억 원에서 수천만 원 하는 내시경과 초음파장비도 들여놓아야 한다. 매달 직원들 인건비에 건물 임대료, 대출이자도 갚아야 한다. 개원과 동시에 의사로서 정체성보다 자영업자로서 역할이 더 강해진다. 대형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병상을 확충하고 고가 첨단장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해 외래환자 진료에 목을 맨다. 3분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 그렇게 많은 환자를 봐야 할까.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정부도 인정한 것처럼 현행 의료수가의 원가보존율은 70%대 중반 수준이다. 당연히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는 진료만으로 힘드니 비급여 진료와 검사에도 눈을 돌린다. 짧은 진료시간 탓에 환자들에게 충분히 질병예방을 위한 상담을 할 수 없다. 일단 진단을 하고 약 처방을 해야 한다. 환자들도 병원을 찾으면 약 처방을 받거나 간단한 검사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만일 짧은 시간 진료를 받으면서 약 처방이나 검사도 없이 “아직은 괜찮으니 좀 더 지켜봅시다”란 말을 들으면 화를 낼 것이다.

미국의 일차의료기관 의사들처럼 충분한 수가가 보장돼 하루에 10~2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환자 한 명당 수십 분의 시간을 할애해 건강상담과 질병예방 정보를 제공한다면 환자에게 “좀 더지켜봅시다”란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3분 진료에 박리다매를 해야만 병원이 생존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니 거의 모든 환자에게 약 처방을 한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오리지널 신약과 비교해 연구개발비가 거의 들지않는 복제약의 보험약가는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다. 국내 제약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축적된 자본을 앞세워 공격적인 영업을 편다. 자기네 회사의 의약품을 처방한만큼 경제적 이익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한다. 제약사와 의사간 리베이트가 성사되기 딱 좋은 환경이고 구조이다.

쌍벌제가 시행되고 있는 한 리베이트 수수는 엄연히 현행법 위반이다. 어기면 처벌받는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의료환경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리베이트 근절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의사들이 현행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 리베이트가 생길 수 있는 ‘음습한 공간’을 없애지 않는 한. 의사들을 비윤리적 집단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든, 혹은 리베이트를 만드는 구조적 환경을 개선하든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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