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들 "분만현장 떠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분만취약지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

[라포르시안] 분만 중 부주의로 외국인 산모의 태아가 숨졌다는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법원 판결을 놓고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앞서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7일 독일인 산모의 분만 과정에서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5차례나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방치해 심정지로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에 대해서 금고 8월을 선고했다.

법원의 A씨가 1시간 30분가량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검사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판결의 주요 근거로 들었다.

이와 관련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13일 성명을 내고 "분만 중 언제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산부인과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자궁내 태아사망을 사유로 태아의 분만을 돕던 의사를 마치 살인범으로 낙인찍어 교도소에 구속한다면 대한민국의 산부인과의사는 전과자가 되어버리고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만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분만과정 총 20시간 중 산모가 많이 힘들어해 단지 1시간 30분 동안 태아 모니터링을 할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그 사이 태아사망이 일어났다"며 "이것이 교도소에 가야할 구속사유라면 대한민국에서 태아 모니터링을 하지 않고 이뤄지고 있는 모든 가정분만이나, 인위적인 의학적 개입과 모니터링을 전혀 하지 않는 자연분만, 그리고 조산원 분만과 같은 경우는 모두 살인행위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판결이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을 더욱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태아심박수 감소는 태아의 상태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므로 임신부와 태아감시는 의사의 재량에 따라 간헐적인 태아 감시를 할 수 있다"며 "약 1시간여 남짓 동안 산모가 불편해 태아 심박수 모니터링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했다는 게 감옥까지 갈 사유라면 분만과정에서 제왕절개을 하지 않고 그 어렵고 위험한 진통관리를 할 의사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수많은 산모들의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모든 태아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게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판결이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는 물론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지원 기피를 더욱 심화시키고, 종국에는 대한민국 분만환경을 파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 기사:  일본 ‘오노병원 의사 체포 사건’을 보라!>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자원분포' 통계자료에 따르면 분만실을 보유한 산부인과 수는 지난 2007년 1,027개소에서 2016년 7월말 현재 743개로 줄었다.

60분내 분만의료 이용율이 30% 미만이고, 60분내 분만 가능 의료기관 접근이 불가능한 가임여성 비율이 30% 이상인 분만취약지는 2015년 말 37개 지역에서 2016년 말에는 34개 지역으로 늘었다.

자료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자원통계. 표 제작: 라포르시안
자료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자원통계. 표 제작: 라포르시안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계속 줄면서 지방 중소도시의 분만기관 접근성을 크게 악화됐고, 최근 들어 고령 산모를 포함한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가 늘고 있지만 분만기관이 줄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의사회는 "이런 부당한 처우로 인해 의대생들은 10년째 산부인과 전공을 기피하고,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부인과 포기를 고민하게 하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50%이상의 분만의료기관이 폐업을 하며 분만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결국 분만을 할 수 없는 이런 환경으로 인해 산부인과의 폐업가속화는 물론 의사들의 분만기피로 46개 시군구 지역에서 분만의료기관이 없어 산모들이 심각한 위협에 빠져 있다"며 "잘못된 판결과 제도는 이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 시기가 더 늦어진다면 이 나라의 분만 인프라는 완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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