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보건산업 혁신 강조…주먹구구식 엉터리 정밀의료 계획·대기업 특혜 논란 원격의료 활성화 고수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맞춰 보건의료 R&D 혁신, 제약산업 육성, 빅데이터 활용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검토하는 보건산업 주요 중장기계획 수립 계획에 감사원으로부터 구체적인 추진 근거가 미흡하고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받은 정밀의료 관련 내용도 그대로 포함하고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의료상업화와 대기업 특혜 의혹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원격의료 및 모바일 헬스케어 등을 통한 맞춤형 건강관리 사업도 확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을 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창조경제'를 앞세워 원격의료와 정밀의료 육성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명분으로 원격·정밀의료 육성을 주장하는 복지부의 표현도 흥미롭다.  

보건복지부 방문규 차관은 지난 28일 제5차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민관협의체' 회의를 열고 보건산업 주요 중장기계획 수립 방향에 관한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복지부는 앞으로 ‘민·관 합동 R&D 전략기획단’ 및 부처 협의체를 구성ㆍ운영하면서 의견을 수렴한 후 오는 10월까지 ▲제2차 보건의료 R&D 중장기 종합계획(2018~2022년) ▲제2차 제약산업 종합발전계획(2018~2022년)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전략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보건산업 주요과제에는 '정밀·재생의료 등 첨단의료 전략적 투자 강화'가 포함돼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밀의료 분야의 전략적 투자 강화를 위해 올해 40억원을 투입해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암 진단·치료법 개발, 클라우드 기반 병원정보통합분석 시스템을 개발한다.

올 상반기 중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및 자원공유 플랫폼 개발, 인공지능 기반 임상진단지원솔루션(CDSS) 개발 기획도 추진한다.

정밀의료는 지난해 8월 10일 개최된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 전략회의에서 복지부가 마련한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이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복지부는 이 사업의 주요 과제로 ▲한국인 최소 10만명의 유전정보, 진료정보, 생활환경·습관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축적하는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한국인 3대 암(폐암, 위암, 대장암) 1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 및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항암 진단·치료법 개발 ▲정밀의료 서비스 인프라 개발 사업 ▲정밀의료 기반 건강관리서비스 개발 ▲인공지능(AI) 기반 진단.치료 지원 솔루션 개발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복지부가 제시한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계획의 근거가 미흡하고, 심지어 정밀의료와 연관성도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관련 기사: 복지부 '정밀의료 기술개발' 추진계획, 주먹구구식 엉터리였다>

국가연구개발사업 예비타당성 심사를 전담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하 평가원)은 지난 1월 말 공개한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를 통해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이 기술적 타당성과 정책적·경제적 타당성 평가에서 여러 가지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의 결론 및 정책제언 중에서.
이미지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의 결론 및 정책제언 중에서.

특히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위한 핵심 기반 사업이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과제는 계획의 구체성이 낮고 세부적인 과제 추진 목표가 모호해 아예 사업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가원은 보고서를 통해 "주관부처에서 제시한 코호트 추진 계획은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거나 계획의 구체성이 낮거나 필수 연구내용 간 선후관계에서 모순이 있는 등 사업추진을 위해 필요한 수준의 기획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며 "2017년부터 1만 명의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수집 대상 정보를 확정하지 못했고 수집 방법이나 대상자의 범위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고 사업 추진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평가원은 또 "코호트를 통해 축적한 정보와 시료들을 이용한 연구에서 발생한 상업적 이득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분양해 연구 및 제품 개발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지만, 공개범위나 분양의 원칙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평가원은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사업의 경우 관련 계획을 구체화·현실화한 뒤 다시 추진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평가원이 예비타당석조사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2016년 8월 4일,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충남 서산시 소재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2016년 8월 4일,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충남 서산시 소재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원격의료 등 규제완화 정책, 국정농단 사태로 당위성 상실"

복지부가 주요 과제로 제시한 원격의료 및 모바일 헬스케어 등을 통한 맞춤형 건강관리 확대 과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앞서부터 원격의료와 모바일 헬스케어 활성화를 놓고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의료상업화를 촉진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한다는 의혹제기가 많았다.

원격의료 활성화의 경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의 건의로 박근혜정부에서 보건의료분야 규제기요틴 과제로 추진됐다.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박근혜정부의 원격의료 활성화를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 정책이 특정 병원자본 및 재벌을 위한 특혜라는 의혹이 더욱 커졌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서 특정 의료인의 해외 진출사업 특혜 의혹, 특정 병원에 대한 특혜 의혹에 더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격의료 등의 의료산업화 정책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 차원에서 추진된 게 아니라 재벌 친화정책으로 추진돼 정부의 제반 의료정책은 그 당위성을 상실했다"고 성토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도 "원격의료, 병원 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 허용, 규제기요틴 등 숱한 문제를 불러일으킨 각종 의료규제완화는 모두 대기업과 재벌의 민원 사항이었고, 돈을 받고 전경련의 요구를 국가정책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며 "모든 비정상적인 ‘박근혜 정책’ 들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안팎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가뜩이나 허약한 공공의료 기반을 무너뜨리고 상업화를 통해 국내 의료체계를 더욱 왜곡시킬 수 있는 맹목적인 보건산업 육성 추진의 폭주를 멈추지 않을 분위기다.

이 때문에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국민 보건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이제라도 의료의 정상화와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본연의 소임에 최선에 다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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