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만성질환리 시범사업 등 실속 챙겨...의협, 노인정액제 등 실속 없이 '빈손'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9일 의료정책발전협의체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강도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과 김록권 의협 상근부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9일 의료정책발전협의체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강도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과 김록권 의협 상근부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각종 의료정책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한 '의료정책발전협의체'(이하 의정협의체)가 좌초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이필수 전남도의사회장은 지난 15일 "의협 쪽 참석자들 사이에서 '협의체를 존속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정협의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의·정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사 출신 정진엽 장관의 발언이 계기가 돼 지난해 초부터 다시 가동된 의정협의체는 그간 38개의 아젠다를 놓고 논의를 벌였지만 의료계가 손에 쥔 것은 별로 없다.  

반면 복지부는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면허관리제도 개선 등 굵직한 사안에서 의협의 협조를 끌어냈다.  

이 때문에 의협 안팎에서는 협의체를 통해 이익을 본 쪽은 복지부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로 주고 받기 식의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퍼주기 협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지난 9일 열린 의정협의체 회의에서는 의협 쪽의 불만이 폭발했다. 

복지부가 의협의 핵심 아젠다인 '노인 외래진료 본인부담 정액제' 개선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며 발을 빼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지난해에는 (노인정액제)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질질 시간을 끌더니 이제는 아예 어렵다고 했다"면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필수 전남도의사회장은 "복지부는 여러 안을 놓고 재정을 추계하고 검토하는 단계라고 한다"며 "검토 중인 안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야지 공유도 하지 않는다. 복지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의협 쪽 인사 대부분은 복지부가 과연 개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의정협의체를 깨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노인정액제 개선은 의료계가 제시한 아젠다 가운데 핵심 사안이다. 

16년째 상한선이 1만5,000원으로 묶이면서 진료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하고 노인들의 의료이용 제한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낮은 상한기준 때문에 경제력이 취약한 노인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커지고, 이로 인해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필수 회장은 "동네의원을 찾던 노인 환자들이 이제는 한의원을 찾고 있다. 한의원은 정액제 상한선이 2만원이라 더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내년이면 동네의원도 초진료가 1만5천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바엔 차라리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노인정액제 개선을 오래 전부터 촉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검토 단계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데 따른 실망과 분노도 만만치 않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황호평 사무관은 "현재 여려 방안을 놓고 검토하는 단계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며 "게다가 급여과만 관여하는 게 아니라 의료정책과 등 여러 부서가 관여된 사안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제도. 지난 1995년부터는 70세 이상 노인에 대한 본인부담 경감제도를 시행했고, 2000년 7월부터 노인 본인부담 경감의 해당 연령기준을 만 65세로 낮춰 수혜대상을 확대했다.

그러다 의약분업 도입을 전후로 수가인상이 이뤄지면서 진료비가 증가하자 2001년 1월 정액구간 상한액을 기존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65세 이상 노인환자가 동네의원에서 진료후 총 진료금액이 1만5,000원 이하이면 1,500원만 부담하는 정액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1만5,000원을 초과할 경우 총 진료금액의 30%를 부담하는 정률제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이 가까운 동네의원을 방문해 외래진료를 받고 총 진료금액이 1만5,000원일 경우 1,500원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되지만 총진료금액이 1만6,000원이 나오면 '본인부담 30%' 정률제를 적용받아 4,800원을 내야 한다.

정액제가 도입된 후 지난 16년 간 의료수가 인상으로 노인의 외래 내원일당 진료비 평균은 정액제 상한기준인 1만5,000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액제 상한액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노인정액제 혜택을 보는 대상자 수는 크게 줄었고, 진료현장에서는 본인부담금이 너무 올랐다며 항의하는 노인환자들의 불만과 민원제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라포르시안 후원 바로 가기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