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대 홍성태 교수 "우리 말·글이 의학 학술활동서 밀려나는 현상 방치하면 안돼"

[라포르시안] 국내 발행 의학학술지의 영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국문 학술지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성태 서울대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는 최근 발간된 대한내과학회지에 기고한 '국문 학술지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글(Perspectives)을 통해 "19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교수 업적 평가 기준에 SCI(E) 등재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우대정책이 시작되더니 2000년대는 더욱 심화돼 지금은 SCI 등재 학술지 논문이 아니면 업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며 학문적 예속과 사대주의의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화 시대에 무슨 사대주의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우리가 출판한 학술지에 낸 논문을 우리가 믿지 못하고, 그 가치를 외국 학술지만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국내 발행 학술지도 SCI 등재지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의 지적처럼 2000년 이후 국내 의학계에서는 학술지를 영문으로 전환하고 명칭도 그에 맞춰 변경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었다. 영문 학술지가 아니면 SCI 등재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지가 국문 학술지로 SCI에 등재되었다가 2013년에 제외되면서 현재 국문 의학학술지가 SCI에 등재된 사례는 없다. 

이에 따라 국문 학술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의편협)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의편협의 의학학술지 DB '코리아메드(KoreaMed)' 등재 학술지 229종 가운데 국문 학술지는 103종(45%)에 불과하다. 특히 국문논문 편수는 총 1만1,586편의 27%인 3,134편에 그쳤다. 

홍 교수는 "우리 연구 업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영문 학술지가 유리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말과 글이 의학 학술 활동에서 밀려나는 현상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안으로 국문과 영문 학술지를 동시에 발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내과학회를 비롯해 영상의학회, 피부과학회 등 규모가 큰 학회들은 국문과 영문 학술지를 모두 발간하고 있다. 진단검사의학회와 유방암학회는 원래 발행하던 국문 학술지를 영문으로 전환한 다음 국문 학술지를 새로 창간했다.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위해 영문으로 학술지를 발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내 회원이나 독자를 위해 국문 학술지도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국문과 역문 학술지의 역할을 분담하는 사례도 있다. 의사협회가 국문 학술지를 발행하고 의학회가 영문 학술지를 발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홍 교수는 "2014년 대한의학회 임원 아카데미에서 '국문 학술지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간행분과 토론이 진행됐는데, 이 자리에서 내린 결론이 국문과 영문 학술지가 역할을 분담해 공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국문 학술지는 국문 의학 용어의 보급, 개발, 활용에 필수적이고 논문 작성의 기본 훈련을 위해서 존재 가치가 충분하고 국내 독자를 위한 의학 학술정보 공급원으로 그 역할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의사 중에서 정보를 영문으로 직접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의사가 국문으로 정보를 얻기를 원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양질의 정보원을 유지할 책임이 학회나 학술단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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