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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로마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로마제국 쇠망사 / 에드워드 기번 지음 / 송은주 등 옮김 / 민음사 펴냄, 2010년

[라포르시안] 이베리아반도에서 시작하여, 터키, 발칸반도를 거쳐 동유럽까지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Book소리에서 소개드린 제리 벤틀리교수는 <고대 세계의 만남>에서 ‘문명의 충돌’보다는 ‘문명의 교류’를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두 개의 문명이 늘 적대적 충돌만 일으킨 것은 분명 아닐 것 같습니다. 충돌이 불가피한 국면의 사이에도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의 교류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이 얼마나 방대하던지, 여행기를 통하여 그것들을 언급하다보니 단편적이지만 로마제국의 역사를 귀동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로마제국의 본거지인 이탈리아와 로마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로마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게 된 동기입니다. 모두 6권에 4,1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18세기에 출간된 저작이다 보니 출간 이후에 발견된 역사적 사실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제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를 아우르던 로마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1737년 영국 런던 근처에 있는 퍼트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기는 했지만, 병약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관심도 별로 받지 못한 가운데 이모의 보살핌으로 독서의 취미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특히 호메로스,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테렌티우스 등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과 로렌스 리처드의 <로마사>를 포함하는 다양한 역사서를 탐독하면서 미래의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쌓아갔습니다. 건강이 회복된 1752년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하였지만, 적응하지 못하였고, 1년반 뒤에는 스위스 로잔으로 가서 학자로서의 훈련을 제대로 받게 됩니다. 

27세인 1764년 로마를 여행한 기번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서서 로마 의 폐허를 바라보면서 영감을 얻어 <로마제국 쇠망사>를 구상하였습니다. 1773년 저술을 시작하여 1776년 2월 17일 제1권을 출간하였고, 1787년 마지막 제6권을 탈고하였으니 무려 15년에 걸친 대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제6권은 그의 51세 생일에 맞추어 1788년 5월 8일 출간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황제가 취임하면서 출범하였습니다. 로마제국 이전의 고대 로마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하여 건설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비역사적 허구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 무렵 로마의 여러 언덕에 마을들이 들어섰고, 서로 통합되어가면서 기원전 7세기 무렵 도시국가 형태의 왕국이 성립하게 됩니다. 기원전 500년경에 왕국이 무너지고 귀족과 평민계급이 같이 참여하는 공화정을 세웠습니다. 평민과 귀족들은 투쟁과 타협을 이어가면서도 기원전 272년경에는 반도를 통일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150여 년간의 정복전쟁을 통하여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면서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였습니다. 기원전 1세기 중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하여 시작한 삼두정치가 공화정을 기틀을 흔들면서 제국 성립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오현제시대(서기 96년~180년)에 융성하여 최대의 강역을 이루었습니다. 서기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는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고 각각 두 명의 황제와 부제가 지배하는 사두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인 395년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며, 동로마제국은 1453년 오스만제국에 멸망하였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가장 큰 이유로 게르만 이주민들의 반란을 꼽는 경향입니다만, 기번은 로마제국의 국력이 쇠퇴하게 된 근본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로마제국의 명운이 다했다고 보았습니다. 동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이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게 되면서 동로마제국의 존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고 있는 로마제국의 쇠망과정이 동로마제국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쇠망사>에도 18세기 유럽역사학자들이 동로마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기번은 오현제시대까지의 로마제국을 ‘위대한 인류의 견고한 구조물’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처럼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견고한 구조물도 세월의 풍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제국에 멸망하기까지 1,300여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제국이 무너져가던 과정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트라야누스황제와 안토니우스 황제 무렵 시작하여 지금은 가장 세련된 유럽 국가들의 야만적 선조라 할 게르만족과 스키타이인들에게 서로마제국이 전복되었던 시기까지를 말합니다. 고트족 정복자들이 일으킨 변혁은 대략 6세기경에 완성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동로마제국의 영광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킨 이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과 이슬람세력이 소아시아에서 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까지 침략하던 시기를 포함하여, 서기 800년 게르만의 서로마제국을 건설한 샤를마뉴가 등장한 시기까지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서로마제국이 부활했던 시기로부터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함락하여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의 시기로 대략 650년 정도에 이른다고 보았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80여년의 행복한 시기(서기 98-180년)로부터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퇴위 이후 혼돈에 빠진 제국을 추스르기까지의 시대를 <로마제국 쇠망사1>에 담았습니다. 황금기를 지나면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근위대의 무력에 기대어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위대의 기대치에 따라서 황제가 바뀌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단의 특징은 속주 혹은 정복지에서도 차출되는 병력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비천하더라도 군생활을 통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황제위에 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군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견고히단 로마제국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마지막 2개의 장에서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본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기술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책과 함께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신학적 해석과 기적과 순교 등을 부풀렸던 것에 힘입어 세력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때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그리스도교도들이 로마의 상징인 신들을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2>에서는 밀라노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의 수도로 공표한 서기 324년부터 훈족에 밀려난 고트족이 로마의 영역에 자리 잡은 서기 395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리스도교의 공인과 이어 벌어진 삼위일체를 둘러싼 교리다툼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다양한 파벌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에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다른 교리를 가진 세력들이 갈등의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의 대립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즉 권력을 쥔 쪽이 그렇지 않은 상대를 엄청나게 탄압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세력을 잃은 쪽이 숨어 권토중래를 노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데, 소아시아의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는 그리스도교도들이 로마제국이나 이슬람제국의 탄압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반대파를 피해서 숨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

<로마제국 쇠망사3>에서는 제국의 변방에 살던 고트족, 반달족 등이 세력을 얻어가는 과정, 아시아에서 이동해온 훈족의 영향, 그리고 서로마제국의 멸망 등을 다루었습니다. 이 무렵에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통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향락을 탐닉했다고 합니다. 궁정은 물론 속주에 이르기까지 매관매직과 부정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지만, 이들의 죄를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국정장악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와 콘스탄티누스의 마지막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를 무대로 벌어진 다양한 민족들의 각축전과 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동로마제국의 서방정복운동 등을 다루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동고트, 프랑크, 롬바르드족, 반달족 등이 이탈리아반도를 차례로 침공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테오도리크왕이 다스리던 시절 동고트족은 로마를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그의 사후 빠르게 무너져 금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과거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명함에 달려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예수의 성격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세력들끼리 끔찍할 정도로 갈등을 빚은 역사를 정리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보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 등으로 갈려진 정황을 설명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는 프랑크족의 이탈리아 정복에 이은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편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 비잔틴제국은 끊임없이 강역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는데, 전성기의 로마제국을 이끌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가 없었고,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제위를 둘러싸고 권력싸움이나 벌이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가 아랍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동쪽으로는 인도북부까지 무서운 기세로 강역을 넓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잔틴의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6>에서는 교황의 주도로 전개된 십자군전쟁의 본질과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에 미친 영향으로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내부적인 갈등, 몽고제국의 성립과 유럽원정 그리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의 성쇠에 이어 오스만제국의 성립, 교황에 의하여 주도된 라틴교회와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의 통합 논의,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 12세기 이후 로마에서 벌어진 교황의 세속지배와 교황청의 아비뇽시대와 로마로 복귀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긴 논설을 맺으면서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하게 된 것은 1. 군사 전제 정치의 무질서, 2.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확립, 3.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제국의 분열, 4. 게르만과 스키타이 야만족들의 침략과 정착, 5. 이슬람교의 창시, 6. 교황의 세속 통치, 7. 십자군 원정, 8. 사라센과 투르크인의 정복 등이 주요 요소였다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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