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 통해 근거 부족·추상적 계획 등 지적…핵심 과제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은 아예 제외시켜

[라포르시안] 작년부터 보건복지부가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추진한다고 강조해 온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이 주먹구구식의 엉터리 추진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사업 과제 중 일부는 정밀의료와 관련성이 없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정밀하지 못한 엉터리 로드맵을 기반으로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관련 기사: 정밀하지 못하고 거칠고 엉성한 복지부의 ‘정밀의료 육성 프로젝트’>

앞서 지난해 8월 10일 개최된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 전략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이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당시 복지부는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을 소개하면서 "정밀의료는 유전체 정보, 진료·임상정보, 생활습관정보 등을 통합 분석하여 환자 특성에 맞는 적합한(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진료의 정확도와 치료 효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이 사업의 주요 과제로 ▲한국인 최소 10만명의 유전정보, 진료정보, 생활환경·습관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축적하는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한국인 3대 암(폐암, 위암, 대장암) 1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 및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항암 진단·치료법 개발 ▲정밀의료 서비스 인프라 개발 사업 ▲정밀의료 기반 건강관리서비스 개발 ▲인공지능(AI) 기반 진단.치료 지원 솔루션 개발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정밀의료 기술개발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오는 2025년 기준으로 건강수명은 76세로 3년 연장되고, 3대 전이암(폐암, 위암, 대장암)의 5년 생존율이 8.4%에서 14.4%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147조원 규모 세계 정밀의료 시장의 7%를 점유하고, 10조원이 넘는 부가가치 창출 및 약 12만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표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표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그러나 복지부가 제시한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계획이 상당수가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정밀의료와 연관성도 낮다는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관으로 예비타당성 심사를 전담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하 평가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은 기술적 타당성과 정책적·경제적 타당성 평가에서 여러 가지로 미흡한 점이 지적됐다.

특히 정밀의료 기술개발에서 핵심 기반 사업이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과제는 계획의 구체성이 낮고 세부적인 과제 추진 목표가 모호해 아예 사업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분석했다.  

평가원은 보고서를 통해 "주관부처에서 제시한 코호트 추진 계획은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거나 계획의 구체성이 낮거나 필수 연구내용 간 선후관계에서 모순이 있는 등 사업추진을 위해 필요한 수준의 기획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며 "코호트 규모는 타겟 질환이나 유전요인 등을 설정한 후 발병률이나 유전요인의 보유 빈도 등을 고려해 산정해야 함에도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17년부터 1만 명의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수집 대상 정보를 확정하지 못했고 수집 방법이나 대상자의 범위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며 "유전체 정보를 비롯해 제공 및 연계하는 정보 범위를 정하는 것은 사업의 필요성 측면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개인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획득 집적할 것인가와 관련 있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사전에 결정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가 수준의 코호트 구축을 위해서는 포괄적 동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보와 함께 관련 연구가 기획되고 추진될 때마다 개인정보 보호와 이익 공유에 대한 내용을 공공에 알리는 지속적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빠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광범위한 DB에서 개인식별정보 분리만으로 개인정보 보호가 이뤄진다고 기대할 수 없으므로, 잠재적 위험을 분석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며 "코호트를 통하여 축적한 정보와 시료들을 이용한 연구에서 발생한 상업적 이득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분양해 연구 및 제품 개발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지만, 공개범위나 분양의 원칙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정밀의료 기반 건강관리서비스 개발 계획의 적절성도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는 "건강관리 디바이스의 구체적인 개발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고, 건강관리서비스의 대상과 의료현장에서 AI 기반 진단 치료 솔루션 지원 서비스를 적용할 대상 질환군 등을 설정한 근거가 부족하며 수집 대상 정보를 확정하지 못했다"며 "지원 서비스의 대상 질환으로 선천성 감각질환과 만성 질환, 약물반응 등을 선정했으나, 선정 과정과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제시한 범위 또한 추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세부사업 중 하나인 ‘정밀의료 서비스 개발사업’은 정밀의료와 연관성이 현저히 낮아 함께 추진하기에 부적절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표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표 출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유전체·Health-ICT 융합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평가원은 이러한 기술적·정책적·경제적 타당성 분석 결과를 근거로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사업을 제외하고, 사업비도 당초 제시한 5,063억원의 1/6 수준인 752억원 규모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업을 대폭 축소해도 비용 대비 편익(B/C)이 1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원은 보고서의 결론을 통해 "결과적으로 법 제도적 환경 조성 여부 및 정밀의료와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코호트 관련 세부과제와 정밀의료 서비스 개발 관련 세부과제를 모두 제외했고, 암 진단 치료법 및 병원정보시스템 관련 세부과제에서도 정밀의료와의 연관성이 낮은 내용을 제외했다"며 "이에 따라 5개 세부과제가 2개로 축소 조정됐다. 이러한 근거에 따라 조정한 결과,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의 총사업비는 원안에 비해 3,361.8억원이 삭감된 752.3억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총편익과 총비용을 함께 고려했을 때 도출되는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 대안의 B/C는 0.90으로, 사업 원안(0.34)에 비해 경제적 타당성을 상대적으로 더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국가전략 프로젝트로 추진하면서 충분한 사전 검토와 논의도 없이 '우물에서 숭늉 찾기' 식으로 성급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그 내용마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는 게 드러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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