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실손의료보험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를 보면 '본말이 전도됐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실제로는 실손보험금의 비급여 지출 부담 감소)을 위해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를 적극 통제해야 한다는 논의를 지켜보자면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실손의료보험 심사를 위해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활용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당초 실손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과 비급여 진료에 따른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보충형 보험'의 개념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좀처럼 진전이 없는 사이에 실손형의료보험 가입자 수는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순히 가입자 수만 따져보면 오히려 건강보험을 압도할 정도다. 보충형이 아니라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 아닌가 착각이 들 만큼.

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5년 건강보험 주요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인구는 총 5,049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를 제외한 실가입자 수는 약 3,002만명 정도다. 놀랍게도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이보다 더 많다. 보험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인원은 총 3,265만명에 달했다. 건강보험의 지역.직장가입자 수를 합친 것보다 260만명 정도가 더 많다.

심지어 작년 11월 한국신용정보원이 공개한 실손의료보험 통합 집계·분석 자료를 보면 2016년 9월 말 기준으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수가 345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저런 통계를 볼 때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가입자 수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전국민 건강보험이고, 어느 쪽이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지 헷갈릴 정도다. 바야흐로 '전국민 실손의료보험 시대'가 도래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 실손의료보험 규모가 폭증한 걸까. 이유는 딱 한가지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최근 6~7년 간 되레 떨어졌다. 2009년 65.0%를 기록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0년 63.6%, 2011년 63%, 2012년 62.5%, 2013년 62.0% 등으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63.2%로 소폭 높아졌다. 하지만 2009년의 보장률 수준에도 오르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4대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앞세워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3개 항목에 약 8,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원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건강보험 보장률은 되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장성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 재원을 쏟아부었는데 보장률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한 건 무슨 이유인가. 건강보험공단은 보장성 확대보다 비급여 영역이 더 빠르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더디고 소극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6년 8월 말 기준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흑자 규모가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넘어섰다는 게 그 증거다. 2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쌓였음에도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비급여 타령만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찔끔찔끔 진행되면서 비급여 '풍선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낮은 의료수가에 시달리는 의료기관들이 생존 차원에서 돈이 되는 비급여 항목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의료환경이기 때문이다. 특정 질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면 거기에서 사라진 비급여를 다른 질환 분야에서 새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건강보험 보장률은 되레 떨어지고 가계의 의료비 부담은 높아지면서 실손의료보험 가입을 더 부추기는 꼴이다. 국민들은 높은 의료비 지출 부담을 떠안고, 또 그걸 피하기 위해서 실손보험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다.

급기야 민간보험사들은 비급여 진료의 증가로 실손의료보험 판매에 따른 손해율이 높아지고,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애초에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과 환자 본인부담을 보장하기 위해 나온 게 바로 실손의료보험이다. 이제는 실손보험금 지출에서 비급여 비중이 커져 민간보험사의 손해율 악화가 심화된다는 이유로 비급여 진료를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를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 재원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민간보험사의 수익성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뻔뻔한 수작이다.

실손의료보험과 비급여의 상관관계는 그 반대로 봐야 한다. 실손형의료보험이 가입자들의 개인의료비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증가시킨다는 실증적인 연구결과도 나왔다.<관련 기사: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시켜> 지난해 10월 열린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실손의료보험 가입이 의료비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집단의 보험자 부담금과 비급여 등의 지출 증가 폭이 미가입자 집단에 비해서 훨씬 더 컸다. 비급여 때문에 실손보험금 지출이 느는 게 아니라 실손의료보험 가입 자체가 비급여 진료비 지출을 증가시킨다는 거다.

실손의료보험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명확하다.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고, 실손보험금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민간보험사의 수익을 위한 해법에 불과하다. 실손의료보험이 등장한 배경을 놓고 보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결국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풀어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고 신속한 보장성 강화를 통해 비급여 항목을 급여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보장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8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실손의료보험 안정화니, 건강보험과의 동반자적 관계니 하는 주장은 다 의심해 봐야 한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한 의료민영화 노림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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