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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료시스템·의료정책을 망가뜨린 박근혜의 범죄[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법치주의’ 시비

[라포르시안] 몇 달 동안 법이 유례없이 가까워졌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특별검사가 이른바 ‘국정농단’의 당사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헌법 개정도 시기만 문제지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다. 법은 어느 때보다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시민 전체가 이렇게 깊게 법을 공부한 시기가 있었던가? 헌법재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절차와 내용을 알고 의견을 주장한다. 모두 법 전문가가 되어야 하니 어찌 보면 시대적 불행이다.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의 내용과 절차를 알아야 하는 사회가 어찌 좋다고만 하겠는가.

이런 법(들) 또는 법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이 시기, 법이 사회발전의 동력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자들을 단죄하는 것, 나아가 죄를 고발하고 책임을 묻는 데에 법이 작동한다. 많은 사람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헌)법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인 한, 법과 법치주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권력 집단의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횡포와 악행을 줄일 수 있다면, 법의 역할을 낮춰볼 수 없다. 한때는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는 중요한 근거 노릇을 했다. 그뿐인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소득과 부동산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을 어찌 법의 횡포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법은 또한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삶의 보호와 안녕이 아니라 자칫 억압과 기득권 보호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법리를 따진다는 명분으로 명백한 죄를 논란으로 만드는가 하면, 실정법을 핑계로 죄를 도덕과 정치의 문제로 바꾸는 일도 흔하다. 

당장 며칠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만 해도 그렇다. 뇌물죄가 성립되는지 또는 대가성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상식’과 ‘감정’으로는 길게 따질 것도 없지만, 법과 법치는 이를 배신했다.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지금 한국 사회에 법과 법치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과 법치가 허술한 것은 ‘의료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불법 시술에다 비선 진료,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이상한 주사와 처치는 의료 게이트를 넘어 또 다른 국정농단이다. 무슨 주사에 시술, 안티에이징에 줄기세포라고 하면 그냥 농담처럼 되기 쉽지만, 이는 중요한 사회 활동을 부정적 의미에서 ‘탈공공화’한 질 나쁜 사례라 해야 한다.      

우리는 의료 게이트가 범죄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국정 책임자가 국정의 하나인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관련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뿐인가, 의료인과 병원, 일반 국민의 인식과 행동에 오랜 기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이상한 주사가 앞다투어 출시되고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한다고 한다.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한국 의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을 죄라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법치다. 죄가 분명하고 죄를 지은 사람도 명확한데, 실정법으로 이들의 죄를 묻기는 쉽지 않다. 기껏해야 이에 개입한 의료인의 의료법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죄의 본질과 무관한 이상한 다른 법률(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동원해 검찰의 체면치레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구속 영장의 기각이든 의료 게이트를 처벌할 법이든, 법과 현실 사이에는 이처럼 틈이 많다.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법에서 떨어지고 또한 법에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완전히 의존하는 것도 곤란하다. 법과 법치주의는 ‘상대화’되어야 한다.

2015년 12월 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법과 법치주의가 제 자리를 찾는 데에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의 법 인식을 바꾸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사법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전자는 법과 법치에 대한 시각의 문제, 후자는 당장 관심을 가져야 할 실천적 과제다. 

우선 우리가 가진 인식의 문제. 법과 법치는 당연히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권위의 기원이나 법의 기초, 토대 또는 정립은 정의상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들에게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해체할 수 있는 것들이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또한, “정의에 비추어 우리는 법이 부당하다거나 적어도 어떤 판결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비판할 수 있다”(박은정, <법철학의 문제들>).

악법도 법일 수는 있지만 정의는 아니다. 어떤 법이나 판결을 절대 옳다고 받아들여야 할 어떤 근거도 없으며, 그런 점에서 이들은 상대화되어야 한다. 정의를 법의 본질적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한, 법과 법치는 그 이념, 즉 정의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 그리고 최소한의 형식이자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진행 중인 탄핵은 법이지만 법 이상이어야, 그리고 그것은 정의여야 한다. 이는 탄핵 인용으로 끝나는 법률적 절차지만, 정의의 관점에서 국정운영을 심판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들의 뇌물과 의료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실정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정의이고, 정의의 관점에서 그들의 죄를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정법과 관계없이 어떤 죄인지 따지고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그 과정과 성과가 다시 법과 법치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법률이 정해 놓은 것만 죄가 아니다. 야스퍼스는 죄를 법률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으로 나누었다(<죄의 문제>, 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 맥락은 조금 달라도 박근혜 정권과 그 주변이 저지른 죄도 이 모두를 포함한다. 현행 실정법과 법치주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해서 함부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법과 법치주의를 상대화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법률가(또는 법률 관료)에 있다. 죄의 유무와 형량,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법률가는 가치의 진공 상태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inspector)’가 아니다. 미국 대법원 판사들의 이념 성향이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그 편향은 흔히 은폐되어 있다. 

가치 ‘편향’은 노골적이다. 악명 높은 학연, 지연, 남성 50대 등등은 잘 알려졌지만, (다들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그런지) 사회경제 질서에 대한 편향에는 관심이 없다. 장담하건대, 지금 한국의 법률가, 특히 법률 관료 대부분은 자유시장 경제와 재산권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긴다(생생한 증언이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번역한 법률가들의 감동적인(!) ‘옮긴이 후기’가 그것이다).

이런 법률 관료들이 법과 법치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겠는가? 버스비 2,400원 횡령과 이재용의 수백억 횡령에 잣대가 다르다고 비판하지만, 부당한(?) 비판이다. 기업, 노동, 재산권애 관해, 그러다 보니 횡령과 배임에 관해 판단은 일관된다. 재벌 총수가 횡령한 돈이 얼마든, 그것을 그들이 소유한 재산(또는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전혀 혼란스럽지 않다. 소유권이 없는 2,400원과 소유권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인 몇 백억은 비교할 수 없다.

법체제가 한 사회의 사회경제체제에 조응하는 것인 한, 법률 관료가 어느 정도까지 거기에 맞추어 치우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편향은 체제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 기술적이고 미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에 여성과 비주류 대학, 법학 교수 출신을 뽑는다고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의심스럽다.

그나마 이런 한계를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핵심 법률 관료를 선거로 뽑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검찰과 법원이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무소불위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는 어떤 민주주의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들의 권력 또한 시민 참여와 견제를 통해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마땅하다.    

실무적으로는 검사장 직선제 논의가 시작되었으니(관련 기사: 국민이 직접 뽑는 '검사장 직선제' 추진된다…"검찰 독립 대변혁"), 더 많이 논의하고 검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헌법 개정에도 반영되어 검찰과 법원을 포함한 사법체제가 시민 중심의 민주적인 것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정권 심판과 탄핵, 대통령 선거, 헌법 개정은 실정법과 법치주의에 크게 의존한다. 법과 법치주의의 불완전함이 비판을 받지만, 법체제가 내재적으로 가진 사회발전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 법과 법치주의를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 정의가 실현되는지가 더 높은 기준이 되어야 하며, 그에 비추어 법과 법치주의는 늘 상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알립니다]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홈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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