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녹는 인공고관절' 리콜 소극적 논란..."재수술 비용 보상" 약속 해놓고 건강보험 적용 받아

[라포르시안] 기업의 모범적인 윤리경영 사례를 꼽을 때 자주 언급되는 게 있다. 다국적 기업인 존슨앤드존슨이 34년 전에 실시한 '타이레놀' 리콜 사례다.

1982년 미국 시카고의 한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구입해 복용한 사람 중에서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이 복용한 캡슐형 타이레놀에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타이레놀 제조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은 추후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존슨앤드존슨은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신속하게 타이레놀 전량 회수에 나섰고, 소비자와 의료기관을 상대로 신속하게 주의정보를 전달했다. 그러고도 부족했던지 '타이레놀을 절대 복용하지 마십시오'라는 광고까지 냈다.

막대한 피해를 감내하면서까지 소비자 안전을 위해 자사 제품과 관련된 문제를 공개하고, 적극적인 리콜 조치를 취해 더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기업의 모범적인 윤리경영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윤리경영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존슨앤드존슨의 인공고관절 제품 리콜 사례를 보면 상당히 비윤리적인 경영행태가 드러난다.

앞서 존슨앤드존슨은 자회사 드퓨이의 'ASR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수술 받은 환자의 재수술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지난 2010년 8월 제품을 판매한 전세계 각국에서 자발적인 리콜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도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을 통해 ASR 인공고관절이 1,338개가 수입됐고, 이 중에서 379개만 회수조치가 완료됐다, 나머지 909개는국내 28개 의료기관에 공급돼 환자들에게 시술된 상태였다.

문제는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이 취한 리콜 안내 조치가 타이레놀 사태 때처럼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시 한국존슨앤드존슨은 자발적 리콜을 결정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인공고관절 제품을 공급한 의료기관들을 통해 시술받은 환자에게 리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재시술시 비용도 부담하겠다는 회수계획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의료기관을 통해 해당 제품을 사용해 수술받은 환자에게 연락할 것을 요청하면서 리콜된 인공고관절 제품에 대한 정보와 환자들에게 전달할 수술비 지원 등의 보상 프로그램 안내문을 제공했다.

그런데 존슨앤드존슨의 자발적 리콜이 너무 조용하게 진행된 탓에 문제가 된 인공고관절 제품을 시술받은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리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몇 차례 관련 보도가 나오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해당 환자들이 존슨앤드존슨의 리콜 사실과 수술비 지원 등의 보상 프로그램을 인지하게 됐다. 그제서야 해당 환자들이 존슨앤드존슨의 인공고관절 제품이 리콜된 사실과 등록을 조건으로 진료비, 수술비 등 의료비와 교통비, 일실 임금 등을 지불하는 공식 보상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앤드존슨의 공식 보상프로그램에 등록한 국내 환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의 ASR 인공고관절 제품을 시술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320여명의 환자 중에서 이 회사의 공식 보상 프로그램에 등록한 환자는 170여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인공고관절 리콜과 관련된 이 회사의 공식 보상 프로그램은 올해 8월 24일자로 종료를 앞두고 있다.

환자단체연합은 "리콜 대상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수술 받은 환자들의 재수술률이 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높아지고 있고, 제품에서 계속적으로 나와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코발트와 크롬 성분의 장기 추적관찰이 필요한 상황에서 2017년 8월 24일 보상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조치"라고 비난했다.

이 회사의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되는 보상금 수준도 미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회사의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해 1인당 2억6,400원 씩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진행되는 보상 프로그램은 진료비, 수술비 등의 의료비와 일실 임금·교통비의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피해자들 중에는 미국 법원에 존슨앤드존슨을 상대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나왔다.

환자단체연합은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되는 보상금 수준도 미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진료비, 수술비 등의 의료비와 일실 임금·교통비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다국적 회사가 한국 진출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고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고, 피해 배상액 또한 외국에 비해 소액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ASR 인공고관절 시스템 리콜 안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ASR 인공고관절 시스템 리콜 안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더 심각한 문제는 존슨앤드존슨이 리콜 대상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재수술을 받을 경우 해당 진료비 일체를 보상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13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의 ASR 인공고관절 제품 관련해 재수술 받은 환자의 진료비가 건강보험 급여로 청구됐다.

이런 식으로 공단에 청구된 금액이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글을 통해 "2010년 실시한 ASR 인공 고관절 시스템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통해 해당 제품은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더 이상 의료진 및 환자분들께 제공되지 않았다"며 "드퓨는 필요한 경우 재수술을 포함해 리콜과 관련해서 실시되는 검사와 치료에 소요되는 합리적이고 통상적인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리콜과 관련해 발생한 일실 임금과 교통비 등의 부대 비용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보상을 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재수술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음으로써 환자들이 낸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보상비 일부를 지급한 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와 관련 건보공단은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의 인공고관절 재수술 비용에 대해 공단부담금을 전액 환수조치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시술자 정보를 요청하였으며, 시술자 정보가 확보되는 즉시 재수술 비용과 사후관리 비용 중 공단부담금에 대한 확인 및 환수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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