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기관 공익성 인식 분석한 논문 나와…"공공성 강화 위한 협치구조 그 자체가 공공의료 강화의 시작"

[라포르시안] 지난 2012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를 계기로 의료취약지에서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정부가 인정해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끔 됐다.

'공공보건의료'의 정의가 국공립 소유의 관점에서 기능의 관점으로 재정립된 셈이다.

공공의료 강화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반길 수만은 없다. 국내 의료공급체계에서 민간의료 인프라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할만큼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나온 수단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형식적인 공공의료 확충 계획마저 제대로 수립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들어온 민간의료기관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활동에 치중하고 있을까.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성 인식과 평가, 의료기관의 조직운영, 의료서비스 제공의 공익성 현황을 조사·분석한 연구논문이 나왔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정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이근찬 우송대학교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는 <보건사회연구>지 최근호에 '한국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성: 분석틀 개발과 현황의 측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의료기관의 공익성을 투입-과정-산출이라는 세 요소에 기반해 살펴보는 통합 분석틀을 제시하고, 이에 근거해 국내 일부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성 인식과 평가, 의료기관의 조직운영, 의료서비스 제공의 공익성 현황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13년 복지부의 민간병원 자금지원 사업 중 응급의료기금 수혜 민간의료기관 및 응급의료기금 외 사업(분만취약지, 신생아집중치료지원 사업) 수혜 기관,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300병상 이상 병원과 취약지 소재 병원 등 총 303개 민간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표 출처: '한국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성: 분석틀 개발과 현황의 측정' 논문
표 출처: '한국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성: 분석틀 개발과 현황의 측정' 논문

이번 조사에서 '의료기관의 공익성 인식과 평가'와 관련해 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활동을 수행하는 주요 동기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시장경쟁에서의 병원생존(중요도 6점(7점 척도)), 시장 주도자로서의 사회적 평판과 인정(6점), 그리고 병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의 실천(6점)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이에 비해 서비스 생산과 제공의 효율성 제고(5.4점), 제도적 요구에의 순응과 정당성 획득 때문(5점)이라는 동기에 대해선 중요성 인식이 조금 떨어졌다.

공공의료활동의 수행동기로 규범적, 조직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으며, 그 다음이 경제적 요인, 마지막으로 정치적 요인이 동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민간의료기관들은 병원이 수행해야 할 핵심적인 공익적 가치로 '의료의 질적 향상'(응답비율 32.11%)과 '취약계층의 의료이용 지원'(형평성 제고활동, 32.11%)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는 '지역사회 편익 증진 활동'(17.9%)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으며, 타 기관이나 정부와의 네트워크 활동( 3.6%)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의료기관의 조직운영' 관련해 조사에 참여한 민간의료기관들의 대부분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로부터 하나 이상의 사업 지원금을 수혜 받고 있었다.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지원을 받는 경우가 약 80%로 가장 많았다.

전체 의료수익 중 공공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보기 위해 건강보험 진료수익과 의료급여 진료수익을 물어본 결과, 각각 평균 74.4%(최소 35%, 최대 92%)·7.5%(최소 2.1%, 최대 18.5%)로 나타났다.

연간 시설확충 및 장비구입 시 정부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의료기관은 5곳이었다. 즉,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라는 제도를 통해 재정적으로 공공 의존도가 높음은 물론이고 다양한 각종 정부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정부 정책들과 긴밀히 연계돼 있었다.

병원의 책무활동에 대한 평가 결과에서는 의료법 등 의료관계 법적 요건의 준수(10점 만점에 5.9점), 근로기준법 등 근로관계법에 따른 직원의 신분과 근로조건의 안정성 유지(5.2점), 의료의 적정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5.2점) 등은 높게 나왔다.

이에 비해 병원 운영에 있어서 환자 또는 지역사회 주민참여(4.9점), 고신뢰 조직이 되기 위한 활동(3.4점) 등은 낮은 점수를 보였다.

민간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 제공의 공공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장실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일부 필수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기준병상비율, 적정진료활동 수행 여부, 의료의 질 관리 노력 여부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기관 모두가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중환자실과 재활치료실을 운영하는 기관의 비율도 각각 86%, 71%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분만실 및 신생아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관은 약 60%에 그쳤다. 음압격리병동이나 정신병동,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기관은 전체 응답기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응답 기관의 평균 기준병상비율은 68%였으며, 기관에 따라 최소 11%에서 최대 97%까지의 분포를 보였다. 적정진료활동과 관련해서는 약 절반 정도의 기관이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의료의 질 관리를 위해 의료기관 평가인증을 받았다는 곳이 조사 대상 기관의 약 50%에 달했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의료서비스 사업 활동 수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지역사회 주민 대상 보건교육에 참여하는 비율이 75%로 가장 높었다. 반면 지역의 미충족 보건의료서비스 제공계획을 수립(21.4%)한다는 비율은 크게 낮았다.

조사 결과를 볼 때, 민간의료기관들은 공공성을 수익성과 대립되는 가치 및 정부의 통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주로 조직의 생존과 사회적 순응을 위해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의 책무활동, 의료서비스 제공에서의 공공성, 조직운영 과정에서의 민주성 및 개방성 역시 제한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까지 국내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적 역할 수행이 공공성의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추구하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연구진은 "현재의 한국 보건의료체제 안에서 민간의료기관은 의료의 전달과 서비스 질의 관리 등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에 비해 공공성과 공익성 가치의 이해와 실현에 있어서는 치우침이 있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공공성을 인식하고 조직 전반에서 공익성 활동을 추구하며 이것을 조직의 기본 책무이자 사회적 성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별 민간병원의 책임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연구진은 "국내 공공의료의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면 상당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민간 비영리병원에 대해 사회적 역할과 지원을 제도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민간의료기관들이 공익성의 가치를 규범으로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개별행위자, 개별 조직이 아니라 전문가와 학술 단체나 협회 및 다양한 이해집단, 사회의 협력적 노력이 필수적이며, 공공성 강화를 동의하는 협치 구조 그 자체가 공공의료 강화의 시작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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