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 확산…병원의 수익창출 기대 맞물려
"분석 결과의 정확도 물음표…불필요한 과잉검사 초래"

▲ 유전자로 사회적 신분이 나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다룬 SF영화 '가타카'의 포스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전체 분석을 통한 질병발생 가능성의 예측 정확도가 임상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될 경우 지난친 건강 우려와 과잉검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30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국내 제약사를 중심으로 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가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현재 유전체 분석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제약사는 유한양행을 비롯해 동아제약, 보령제약, 안국약품, SK케미칼 등이 대표적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유전체분석 전문업체인 테라젠이텍스와 공동으로 '헬로진'이란 유전체 분석 서비스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헬로진은 테라젠이텍스가 한국인 게놈을 분석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소량의 혈액을 통해 개인의 유전형을 분석하는 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다.

유한양행은 "헬로진은 신뢰도 높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국인에게 발병 및 사망률이 높은 암 질환, 심혈관계 질환, 뇌 질환을 포함한 일반 질환 중심의 검사항목으로 구성됐다"며 "앞으로 정기적으로 전문임상의사위원회 운영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검사 항목수에 따라 총 5개 상품이 출시됐으며, 현재 상급종합병원 5곳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11월부터 인간유전체 연구기업인 디엔에이링크와 공동으로 유전체 분석 서비스 상용화에 들어갔다

디엔에이링크에 따르면 현재까지 730개 병의원과 유전체 분석서비스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말까지 종합병원을 포함해 2,000개 병의원과의 계약체결을 추진할 예정이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9년 마크로젠과 DNA칩을 이용한 유전체 분석 서비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 현재 산부인과 등의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크로젠의 유전체 분석 서비스는 유전자 정보가 담긴 DNA칩을 이용해 전체 염색체 1,440여 곳의 광범위한 유전체 부위를 스캔, 분석하는 스크리닝(G-스캐닝) 검사법이다.

마크로젠은 "G-스캐닝 검사를 받게 되면 개인의 1,440여 부위의 유전체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체이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지체, 자폐, 간질, 학습장애, 발육부진, 각종 희귀병 등 다양한 종류의 유전체이상 질환을 한 번의 검사로 알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안국제약과 공동으로 중국에서 G-스캐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의 수익창출 기대와 맞물려 무분별하게 확산분석 결과 정확도 향상 등 풀어야할 과제 많아

이처럼 개인 대상의 유전체 분석 서비스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병원들의 새로운 수익 창출 기대감이 맞물려 있다.

현재 제공되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검사 항목과 분석 기간에 따라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최대 1,000만원을 넘는다.

이 비용 중에서 의료기관과 유전체 분석업체가 일정 비율로 수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다.

병의원에서는 특히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건강검진과 연계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형병원들도 이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 2011년 6월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미국의 유전자 분석기관인 네비제닉스(Navegeics)사와 연계한 '유전체(게놈) 분석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병원의 유전체 분석 서비스는 유방암과 대장암, 혈관질환 등 29가지 질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으며, 비용은 3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서비스 상용화 이후 현재까지 이용자는 별로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기관이 난립하면서 암이나 성인병, 친자확인 유전체 검사 등을 무분별하게 부추기는 광고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 생명윤리법은 통상적 유전자 검사에 대해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19개 검사만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다.

A대학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현재 법령에서 금지 또는 제한하는 유전자검사는 19개뿐”이라며 “4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간 유전자 수와 검사기술의 발달 속도를 감안할 때 사실상 유전자 검사와 관련한 규제가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질병 진단 관련 유전자 검사는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고, 비의료기관은 의료기관의 의뢰를 받아서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검사를 실시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유전체 검사 서비스가 병원들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부각되면서 과잉검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유전체 검사 결과, 특정 암 발생 위험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 관련 검진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Y종합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우리 병원에도 N 유전체 검사 전문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서비스 제공 협약을 의뢰하고 갔다"며 "수익이 된다는 점에서 병원장이 솔깃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질병발생 위험 예측의 정확도나 수반되는 문제를 고려해 적극 말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유전자 검사는 유전체 분석을 통해 개인의 질병 발생에 대한 상대적 위험도를 제시하는 데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위험도가 몇 배 높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또한 유전체 분석 결과는 인종이나 해독·분석업체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있다"고 정확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유전체 분석에 따른 질병발생 위험도 예측의 정확도는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다. .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유전체 분석 과정에서 갖가지 오류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데 잘못된 분석으로 왜곡된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근거로 환자에게 잘못된 치료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반인들은 유전체 분석 결과를 마치 ‘병이 있다, 혹은 없다’로 받아들여 지난친 건강 염려증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박유근 연구개발본부장은 '1,000달러 지놈시대 미래과학기술의 패러다임-NT,BT,IT의 융합'이란 보고서를 통해 "개인 유전자분석 서비스는 아직까지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부작용 및 단점을 안고 있다"며 "서로 다른 회사에 같은 유전체를 분석할 것을 의뢰했는데 반대로 예측이 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개인의 유전자 정보 분석 서비스가 확대될 경우 생기는 여러 가지 차별이나, 불필요한 공포심이나 걱정을 유발할 수 있다"며 "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 회사들은 앞으로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 인간의 유전정보를 더욱 가치 있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도 유전자 검사 규제 항목을 확대하고, 유전자검사기관의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지난 2011년 11월에는 복지부와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 주최로 ‘유전자 검사 관련 가이드라인 개발’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에서 연세대 의대 진담검사의학과 이경아 교수는 "유전자검사의 임상적 유용성, 대상 질환의 특징 및 중증도, 검사 절차 및 방법 등 관련 항목에 따라 유전자검사를 분류하고 제한 여부를 평가하는 검증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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