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들, 국정농단·강남역 살인사건·알파고 쇼크 등 '정신건강 10대 뉴스' 꼽아

[라포르시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올해 사회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 10대 뉴스로 비선 실세가 저지른 국정농단 사태를 꼽았다. 잇따른 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 인공지능과 인간 간 바둑 대결, 강남역 살인사건도 사회정신건강에 영향을 준 10대 뉴스로 선정했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최근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의 의견을 바탕으로 '2016 대한민국 사회정신건강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꼽은 10대 뉴스는 ▲아동학대 ▲인공지능 대결, 알파고 쇼크 ▲강남역 살인사건 ▲복면가왕의 인기 ▲연예인의 정신건강 ▲국정농단 파문 ▲지진공포 ▲트럼프 당선 ▲20대 정신건강: 혼밥혼술하는 청년들 ▲노인 정신건강 등이다.

지난 5월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에 위치한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들이 나를 견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던 한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 끔찍한 범죄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사회운동이 거세게 전개됐다.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홍진표 소장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차별 의식과 관행을 돌아보고, 나아가 성별간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으로 진료받은 기록이 확인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막연한 불안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홍진표 소장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이들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사회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시기"라며 "중증 정신질환자들도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큰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있었던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이세돌 9단 간의 바둑 대결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특히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패하면서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와 공포도 불러왔다.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전홍진 교수는 "알파고가 이세돌 9 단에게 진다면 컴퓨터 공학자들은 진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무한대의 학습과 대결을 통해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세돌 9 단이 수를 잘못 두었을 때의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승리에 다가갈 때 미소의 의미를 알파고는 알 수 없다. 이 9단이 평생에 걸친 바둑 수련을 통해 얻어진 지혜와 앞으로 바둑을 둘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이치와 희노애락을 알파고가 깨닫기에는 아직 먼 미래가 남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1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대통령의 시크릿></div>편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11월 1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대통령의 시크릿>편 방송 화면 갈무리.

대통령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도 올 한 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정농단 국정조사를 위한 청문회 자리에 출석한 증인들이 대부분의 질문에 '난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혹은 '나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를 지켜본 국민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줬다.

특히 '비선 의사'에 의한 의료농단 사태 증인으로 출석한 의료인들이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하고, 때로는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증언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김석주 교수는 "내 거짓말로 인해 다른 사람이 받을 고통을 떠올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아는 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밖에 20~3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혼밥'과 '혼술'이 유행하는 건 각종 사회적 관계의 홍수에 치인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작은 쉼터 같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맹목적으로 관계맺음을 강조하던 우리 사회가 유아기적 불안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복면'이 갖는 공정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점도 흥미롭다.

복면은 출연자의 외모와 경력 등을 가리고 오직 실력으로만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이런 복면이 없다.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자산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글을 올려 공분을 산 것처럼 돈이나 연줄이 없으면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도 커졌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복면'이란 장치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석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배경과 스펙을 얼마나 가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복면을 벗고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며 "하지만 누군가 승리하고 누군가 패배하는, 경쟁과 질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공과 승리만을 강조하고 패자에게 이길 때까지 다시 도전하라고 채근한다. 모두가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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