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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는 ‘김영재의원’ 같은 곳이 수두룩하다[뉴스&뷰] 왜곡된 의료체계가 낳은 산물…일차의료 본연의 역할 확립해야

[라포르시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부조리한 권력과 그걸 앞세워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편법을 동원해 특혜를 누린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실태가 드러났다.

하필이면 보건의료 분야가 부조리한 권력과 염치없는 비선 실세 집단이 비정상적인 권력의 폭주를 도모한 현장이 돼버렸다. 미용성형 시술을 주로 한 강남의 어느 의원, 그리고 부유층을 상대로 보완대체요법부터 줄기세포 치료까지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업적 의료서비스 중심의 병원이 국정농단 사태의 곳곳에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강남구 논현동의 김영재의원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던 과정에서 김영재의원은 당초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원으로 알려졌다. 의원 간판이 '김영재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로 돼 있어 간판 표기법을 잘 모르는 일부 언론에서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강남구에는 이렇게 일반의원으로 개원해 성형시술이나 피부미용 등의 비급여 진료만 보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산부인과나 외과, 가정의학과 등의 전문의가 자신의 전문과목을 포기하고 일반의원으로 개원한 뒤 미용성형 시술에만 주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기관 현황 자료를 보면 2015년 3분기 기준으로 강남구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 1,434개 가운데 성형외과(333개)와 피부과(122개), 그리고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364개)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57%(819개)에 달했다.

서울시 다른 자치구에서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과목 미표시의원이 차비하는 비율이 10~2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높다. 2015년 말 기준으로 강남구에는 서울시 전체 성형외과(447개)의 약 74%(333개)가, 전체 피부과(449개)의 약 27%(122개)가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 중 상당수가 미용성형이나 피부관리 등의 비급여 진료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적나라한 수치도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현황과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 수를 보면 강남구의 의료공급 시스템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심평원의 '의료자원분포' 자료를 보면 2016년 10월 기준으로 강남구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신고한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총 278명에 달한다.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산부인과 전문의 수가 가장 적은 도봉구(20명)에 비하면 약 14배 가까이 더 많다.

그러나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의원 수를 보면 강남구는 9개이고 도봉구는 5개로 그 격차가 확 줄어든다. 특히  15~49세 가임여성 인구 10만명 대비 분만실 보유 산부인과 수는 강남구와 도봉구 모두 5.2개로 동일하다.

이런 통계치는 강남구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 중 상당수가 분만보다는 부인과 질환이나 피부·미용 등의 비급여 진료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혹은 강남구에는 자신의 전문과목을 숨긴 채 일반의원으로 개원해 피부미용 시술 쪽에 주력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당히 많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김영재 원장은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의다. 강남구에 김영재의원을 개원해 오랫동안 성형외과 시술에 주력하면서 명성을 얻고, 유명 연예인과 정재계 인사들까지 단골 고객으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최순실과 인연이 닿았을 테고,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강남구에는 김영재의원처럼 운영되는 기형적인 병원이 적지 않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진료는 거의 하지 않는, 오로지 돈이 되는 비급여 진료에만 매달리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차움의원은 '차병원그룹'이라는 거대 병원자본이 대놓고 돈벌이 의료를 한 사례라는 점에서 더 논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의료기관에서 의학적으로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각종 시술이 고가의 비용을 받고 이뤄진다. 가명진료라는 은밀함 때문에 불나방처럼 정재계 인사들이 찾아오고, 의사가 편법 또는 불법적 특혜 같은 불미스런 일에 연루될 공산이 크다.

"비효율적이고 국민과 괴리된 의료체계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남아"

김영재의원은 왜곡된 한국 의료체계가 빚어낸 기형종 같은 병원이자 동시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동네의원이기도 하다.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증질환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지방에서는 응급실과 분만실 등의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환자들이 큰 병을 치료하러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느라 연간 수조원을 지출하고,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자신의 건강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단골병원을 두기 힘든 엉망진창인 한국 의료시스템. 그런 의료체계 안에서 제2, 제3의 김영재의원은 계속 등장하기 마련이다. 

'제2, 제3의 김영재의원'이 등장하는 걸 막으려면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인 일차의료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지난 12월 17일 오후 고려대학교 하나스퀘어 대강당에서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창립총회 및 학술대회가 열렸다.

그런 차원에서 일차의료 확립을 위한 정책 연구와 의료체계의 효율적인 재구성 등을 통해서 국민의 건강권 보장에 활동목표를 두는 학회가 등장해 관심이 모아진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일차보건의료를 연구하고 정책 수립을 연구하는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가 지난 17일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일차보건의료학회는 의사뿐만 아니라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보건의료 분야 직종이 연합해 일차보건의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심도 깊은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와 지역을 위한 정책을 제언하는 데 활동 목표를 두고 있다.

일차보건의료학회는 설립 취지문을 통해 "1970년대 후반부터 보건의료체계의 전환과 일차보건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일차보건의료를 위한 인력 확충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고, 일차보건의료는 여전히 취약분야로 남겨지게 되었다"며 "이와 더불어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 역시 전체의료부문 대비 10% 이하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면서 일차보건의료와 의료의 공공성 모두에서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고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학회는 "효율적이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의료체계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남는다"며 "국민들은 정보와 신뢰의 결핍, 그리고 접근성 높은 의료서비스 부족 등으로 자신들의 건강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차보건의료 영역의 약화는 과도한 병원 쇼핑, 적절한 치료시기 상실, 메르스 사태와 같은 감염병 확산 등 곧바로 자원 낭비와 불신,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일차보건의료와 비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는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 의료비 급상승, 체계적이지 않은 질병관리, 건강 격차 문제를 갈수록 심화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학회는 지난 17일 창립총회와 함께 개최한 첫 번째 학술대회에서 '장애인의 건강권과 의료접근권 보장법, 장애인 주치의제도'를 다뤘다.

학회는 "다학제적 팀접근을 기본으로 일차보건의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심도 깊은 연구를 수행할 것이며, 이를 토대로 국가와 지역을 위한 정책을 제언하고,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이러한 학회의 활동은 의료 분야별 일차보건의료의 모델개발로 수렴될 것이며, 주민들의 건강 돌봄에 필수적인 임상 지침이나 자료를모으고 분석해 정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차보건의료학회의 활동은 국가 의료체계의 효율적인 재구성, 주치의등록제도 등 일차보건의료의 정립과 의료인들의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역할 갖기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국민들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천명했다. 

학회는 "안정적인 의료전문가들의 진료활동, 수준 높은 연구자들의 지식활동,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는 건강하고, 건강할 수 있는, 안심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일차보건의료학회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맡겨진 사명과 역할을 매순간 인식하면서 사회적 소임을 다 할 것이며, 국민들의 건강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출범 취지를 강조했다.

고병수 일차보건의료학회 초대 회장은 "특정 보건의료 집단이 아니라 다학제적 접근으로 지역사회의 일차의료를 실천하고자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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