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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어느 젊은 의사의 마지막 기록…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깊어진다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티니 지음 /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의사 치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진료현장에서 죽음을 만나면서 죽음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 경우는 병리학을 전공하고 주검을 마주하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해서는 모든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무리하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숨결이 바람 될 때>입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가 말기 폐암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프롤로그와 암진단을 받기 이전까지의 삶을 정리한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암환자가 되어 치료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한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그리고 죽음 이후에 아내가 쓴 에필로그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과정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 Book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전공한 신경병리학도 3-4년의 병리학 수련과정을 거친 다음에 2년간의 펠로우십을 거치면서 별도의 수련을 쌓은 다음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만,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7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신경과학을 전공하는 일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예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폴 칼라티니는 조금 색다른 이유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신경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부친과 삼촌 그리고 형까지도 모두 의사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 진학한 저자는 영문학과 인간 생물학의 학위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저자는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답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칼라티니가 말기 폐암을 확진받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의 마지막 해라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살짝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극심한 요통과 함께 체중이 빠르게 줄어 암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저자는 1차 진료의사를 방문해서 ‘MRI를 찍어 확인해봐야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차 진료의사는 ‘엑스레이부터 찍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합니다. 암을 진단하는데 엑스레이검사는 거의 효용가치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요통을 진단하기 위해서 MRI검사를 하는 것은 우도할계(牛刀割鷄), 즉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라고 본 것입니다. 요통의 원인을 밝히고자 MRI를 찍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MRI검사가 미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료비절감운동의 주대상이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비급여대상인 MRI검사를 바로 시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1차 진료의 기본검사인 흉부 엑스선촬영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흉부 엑스선촬영을 했더라면 폐암을 진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올 봄에 제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허리와 폐의 엑스선검사를 시행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떻든 엑스선 검사결과는 괜찮아 보였고, 요통과 체중감소 증세도 가라앉았던 것이 칼라티니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몇 주 뒤에 가슴에 심한 통증이 다시 생겼고, 밤에 땀을 많이 흘리며, 체중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필자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이들 가족은 뉴욕 맨하탄 북쪽의 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습니다. 기독교신자인 아버지와 힌두교신자인 어머니는 인도 남부에서 뉴욕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했던 것인데, 자식들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어머니 입장에서는 사막도시로의 이주가 끔찍했을 것입니다. 스탠퍼드로 떠날 때는 절해고도로부터 탈출하는 기분이었다고는 하지만 킹맨의 자연은 성장기의 저자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의 키워주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얻은 커다란 울림은 그에게 작가의 길을 꿈꾸게 했을 것입니다. 대학시절 내 그는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언어가 가지는 힘에 주목하여 영문학의 석사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위논문 주제로 선택한 월터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휘트먼이 추구한 ‘생리적․영적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뒤쫓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휘트먼의 말대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의학의 도덕적 사명이 막중하다고 생각하여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했던 그였지만, 해부학실습이 진행되면서 사체를 하나의 사물로 대상화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묘사한 해부학실습실의 풍경은 제가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그곳에서 강의하던 셔윈 눌랜드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읽었고, 결국 죽음이란 직접 대면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특히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은 신경외과를 전공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신경외과 수련을 시작하면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과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닌 죽음의 전령사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부터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요즈음 제가 맡고 있는 암평가사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문가회의를 잇달아 열고 사례별로 인정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환자거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이해를 시키고 있습니다만, 환자의 선택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반면 저는 그런 환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도 담당의사의 몫이 아니겠느냐는 입장입니다.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 그리고 딸 케이디. 이미지 출처: 흐름출판 도서 홍보 동영상 화면 갈무리.

그토록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 것도 이 책에서 덤으로 얻은 소득입니다. 그 부분을 인용합니다. 

“만약 내가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예상되는 합병증을 무심하게 떠들어댄다면 그녀는 수술을 거부할 것이 뻔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챠트에 환자가 수술을 거부했다고 기록하고, 내 일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며 다음 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115쪽)” 

사실은 ‘하지만’ 이하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압니다만, 저자가 어떻게 했는지는 이 책을 읽어 답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쩌면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답을 이미 눈치 채셨을 것 같습니다. 신경외과의사로서 그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교에서 교수를 제안받는 등 성공이 보장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폐암진단이 내려지면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당장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가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치료를 맡은 종양학 전문의 에마 헤이워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서 외과의라는 그의 직업은 물론 복직의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최적의 치료를 추천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세계적 수준의 종양학 전문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어 치료를 언제 진행하고 보류할 것인가를 잘 파악하고, 환자를 잘 배려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자의 흉부 엑스선 사진 소견으로 보아 선암종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검사결과 PI3K변이가 있고, EGFR양성으로 비소세포성 폐암으로 진단된 것입니다. 표적치료제인 이레사나 타세바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예상되는 기대수명을 딱 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치료 후 찍은 CT검사에서 종양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는 결국 수술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 꿈꾸었던 인생을 살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180쪽)”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폐암을 진단받기 이전의 업무로 복귀하는 것까지는 조금 너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수술하고 병실을 돌보고 밤10시에나 퇴근하는 강행군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암진단을 받고 9개월째 수련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가까워지면서 저자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수백만 달러의 예산이 지원되는 연구소를 비롯한 높은 연봉 등의 조건으로 교수초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의 교수직을 놓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즉 암이 재발하거나 하면 아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스콘신대학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폐암진단을 받기 전의 생활로 복귀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암이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해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라는 에마의 조언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임상의라면 새겨둘만한 내용입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198쪽)”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치료가 마무리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술실로 복귀한 7개월째 추적관찰을 위하여 찍은 CT사진에서 종양덩어리가 뚜렷하게 찍힌 것입니다. 표적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화학요법을 해야 했지만 부작용이 생기는 바람에 그마저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수련과정은 인정을 받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한 셈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진단을 받은 뒤에 시험관시술로 가졌던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향하는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울 수 있었고, 이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칼라티니는 에필로그를 적지 못하였습니다. 딸 케이디가 태어난 8개월 후 죽음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는 그의 아내가 적었습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의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였지만, 아내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262쪽)”라고 한 C.S. 루이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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