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무선통신 기능 혈압·혈당계까지 무상지급..."돈 몇 푼에 찬성하는 전문가 집단" 자조

[라포르시안] 변형된 원격의료 서비스 논란을 사고 있는 전화상담 방식을 포함한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추진으로 동네의원 중심의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이름만 다를 뿐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한 유형인 원격모니터링 사업과 동일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의협은 이 사업이 원격의료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의협은 원격의료 활성화를 도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5일 모바일 기반의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환자의 참여 유도와 자가 혈압·혈당 측정 편의 제공을 위해 환자용 의료기기를 참여의원(1870곳)에 배분했다고 밝혔다.

참여의원에 제공된 의료기기는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된 통신용과 일반용으로, 혈압계는 4만3,600개, 혈당계는 3만4,100개에 달한다. 혈당계는 주 3회분인 채혈침, 스트립, 알콜솜을 포함한 1년분 사용량도 함께 제공된다.

시범사업 참여환자는 사업기간 동안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이 없으며, 의료기기는 무료로 대여하고 성실하게 참여한 환자에게는 종료 후에도 지속관리를 할 수 있도록 대여한 의료기기를 무상지급할 방침이다.

건보공단이 이번 시범사업을 위해 혈압계와 혈당계를 구매하는 데 투입한 예산은 9억 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원격의료로 변질될 우려가 다분하다. 시범사업 추진 방식 자체가 원격모니터링과 거의 동일하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시범사업 방안을 보면 참여 의료기관에서 관리해야 할 환자는 적절한 지원과 교육을 통해 합병증을 예방하고 악화를 감소시킬 수 있는 고혈압·당뇨병 재진환자이다.

의사가 대면진료를 할 때 환자별 관리계획을 세우고, 대면진료 사이에 주 1회 이상 주기적으로 혈압·혈당정보를 관찰하며 필요시 월 2회 이내로 전화상담을 실시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시범사업 참여기관은 기존 진찰료와 별도로 계획수립 및 평가, 지속관찰·관리, 전화상담 행위에 대한 수가를 청구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 참여 환자는 주 1회 이상 통신 기능을 갖춘 혈압·혈당계 또는 일반 혈압·혈당계로 측정 후 모바일앱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생체정보를 전송하면 된다.

이 같은 전화상담, 혹은 모바일 기반의 만성질환 관리는 현재 복지부가 실시하고 있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 방식과 차이가 없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서 통신 기능을 갖춘 혈압·혈당계 또는 일반 혈압·혈당계로 측정한 후 모바일앱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생체정보를 전송하는 방식은 '혈압·혈당 등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장비를 활용'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모형과 동일하다.

유일한 차이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진단에 따른 처방이 가능하지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상담만 가능하고 처방과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큰 틀에서 보면 전화상담을 통한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주치의 제도와 원격의료를 애매하게 결합한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결국 찬성했다. 우리 의사들의 정체성이나 미래에 상관없이 돈 몇 푼에 찬성하는 전문가 집단이 돼 버렸다"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이런 점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가 높다.

전국의사총연합은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이 원격의료로 변질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대한의사협회가 사업 참여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의총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서 대면진료 사이에 주기적으로 환자가 혈압·혈당 정보를 관찰하고 필요 시 상담을 실시하는 지속적 관찰·상담을 '비대면 관리'로 명명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비대면 진료' 행위"라며 "복지부가 단지 처방전 발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관리'로 둔갑한 것은 의료계가 이 시범사업을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치졸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시범사업은 '의사-의료인' 간의 원격의료만을 허용하는 현행 의료법 34조를 개정하지 않고서도 '의사-환자' 간 직접 원격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도 지난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이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에 대해 "큰 틀에서 보면 원격의료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시범사업에 사용하는 혈당계를 공급하는 업체에서도 원격의료 활성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번 시범사업에 혈당계 공급업체로 선정된 I사는 "건강보험공단의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 낙찰은 모바일 헬스케어 및 원격 모니터링 사업 등의 신사업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매출 증가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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