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동향 2016' 보고서…의료공급 시스템 급격한 양적 팽창, 질적 성장은 정체

[라포르시안] 국내 보건의료체계에서 의료공급 시스템의 양적 확충은 크게 개선됐지만 질적 성장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의료인력이나 시설, 장비 등의 확충은 그 정도가 지나쳐 과잉공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야 할 수준인 반면 의료서비스 만족도는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취약한 일차의료 시스템과 병상수 확대를 통한 환자유치 경쟁을 통한 성장, 그리고 취약한 공공의료 인프라가 그 원인이다.

통계청 산하 통계개발원은 국민 생활의 수준을 가늠하고, 사회 각 분야별 주요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보고서인 '한국의 사회동향 2016'을 발간했다.

지난 2008년에 이어 아홉 번째로 발간된 사회동향 보고서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집필했다. 건강 영역의 주요 동향에 대해서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가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2000년 154명에서 2014년 223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간호사 수는 341명에서 641명으로 증가했다.

의사 인력이 증가했지만 실제 환자진료를 하는 활동의사(practicing physicians)는 여전히 부족하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수는 2.2명으로 OECD 국가 평균(3.3명)보다 1명가량 적다. 인구 대비 의사수가 적다는 것은 의사들이 많은 환자를 진료해 노동 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호사는 의사보다 상대적으로 더 부족한 수준이다. 2014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간호사수는 5.6명으로 OECD 국가의 평균(8.9명)에 비하면 3.2명이 더 적다.

의료시설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의료기관수와 병상수가 있다. 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병상규모로 구분하는데, 100병상 이상일 경우 종합병원, 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일 경우 병원이라고 한다. 종합병원은 1995년 266개소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4년 321개소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병원은 398개소에서 1,436개소, 의원은 14,343개소에서 30,689개소로 각각 증가하였다(표 Ⅲ-6).

병원수의 증가와 함께 병상수도 최근 10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향상이나 정부의 의료비 절감 정책 등의 영향으로 병상수 자체가 계속 감소하는 선진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는 2005년 7.9개에서 2014년 13.3개로 증가했다. 국제적으로 보면 2014년 기준 OECD 국가 평균은 4.7개인데, 한국은 11.7개로 약 2.5배 더 많다.

이처럼 병상과 의료장비 등의 과잉공급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건강보험의 저수가 구조에 기인한다. 의료수가가 낮은 탓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방식으로 병원 경영을 유지하거나, 미용성형 시술같은 비급여 진료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한국은 병원들이 병상수가 많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특수한 시장구조 때문에 병상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표 출처: 'OECD Health Data 2014' 중에서.
표 출처: 'OECD Health Data 2014' 중에서.

병상수의 증가는 고가의 의료장비 증가를 초래한다.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의료장비 보유율이 높다. 2014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MRI 보유대수는 25.7대로 OECD 국가 평균(14.9대)보다 10대 이상 많고, CT 스캐너 역시 37.1대로 OECD 국가 평균(25.3대)보다 훨씬 더 많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보건의료분문의 특성상 이런 추세는 국민의 의료이용 증가를 초래한다.

국민 1인당 연평균 내원일수는 1990년 7.9일에서 계속 증가해 2014년 19.7일로 늘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사 진료(상담)횟수도 가장 많은 편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은 14.9회로 OECD 국가 평균 7.0회의 2배에 달한다.

보고서는 "한국인의 의료이용이 매우 많은 것은 단순히 병이 많아서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1차 보건의료가 취약해 만성적 증상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필요한 입원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로 인구 10만명당 천식 및 만성폐쇄성폐질환 입원자수는 2013년 기준 한국이 310.6명으로 OECD 국가 평균(242.2명)보다 훨씬 많고, 같은 시기 당뇨병 입원자수도 한국이 310.7명으로 OECD 국가 평균(149.8명)보다 2배나 더 많았다.

의료공급과 의료이용의 증가는 국민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킨다. 국민의료비는 1990년 7.6조원에서 2006년 55.6조원으로, 2013년에는 102.9조원으로 늘었다. 특히 의료비 지출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3배 이상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은 2015년 기준 한국이 7.2%로 OECD 국가 평균 9.0%보다 낮지만 2005~2015년 사이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한국이 6.8%로 OECD 국가 평균(2.0%)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국민의료비와 관련해 눈에띄는 대목은 공공재원 부담이 낮다는 점이다.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경상의료비 대비 공공의료비 비율은 40.2%에 불과했으나 계속 확대돼 2015년 현재 55.6%에 달한다.

보고서는 "OECD 국가들의 공공의료비 비율이 평균 72.9%로, 한국은 아직도 공공재원 부담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이는 병원을 이용할 때 개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몫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일차의료, 건강보험의 저수가 구조에 기반한 환자유치 경쟁과 그로 인한 의료공급 과잉 상태, 낮은 공공재원 부담과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 등이 맞물려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높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합병원 만족도는 1999년 24.5%에서 2006년 45.2%, 2012년 52.9%, 2014년 54.2%로 계속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 수준에서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4년에 조사된 의료기관 불만족 사유를 보면 높은 의료비(44.5%), 긴 대기시간(43.9%), 치료결과 미흡(40.9%), 필요 이상의 진료(30.6%) 등이 주요 사유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실시된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에 포함된 병원 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독일과 프랑스, 영국, 미국, 스위스, 호주 등의 국가는 자국의 병원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80%를 웃돌았다. 반면 한국은 65% 수준에 그쳤다.

특히 ‘전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과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의 합이 서구 선진국은 50%에 달했지만 한국은 25%에 그쳤다.

보고서는 "지난 30년간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의 증가와 함께 건강보험제도의 정착으로 의료접근도가 높아졌지만 의료비 본인부담이 크고, 의사의 노동 강도가 높아 세심한 진료나 환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필요 이상의 진료와 검사를 실시하는 행태가 환자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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