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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제국의 무기가 됐던 철도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 박흥수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모든 것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모든 것의 ‘역사’를 읽기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뿌리까지 캐들어 가면 무엇이든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죽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정리한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를 라포르시안에서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는 철도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지는 않았지만, 철도에 관한 많은 것들을 정리해냈습니다. 1814년 7월 24일 영국의 킬링워스의 마차용 선로 위에서 30톤의 화물을 실은 8량의 화차를 연결해서 시속 6.5km의 속도로 달린 기관차를 조지 스티븐슨이 만들어낸 것으로부터 기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차의 원리를 추적하다보면 중세 오스트리아의 라이스추크 철도, 고대 그리스의 철도 디올코스라인, 더 멀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건설공사 현장에서 적용한 음각궤도에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는 20년 넘게 기관차를 운전해온 철도기관사 박흥수의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철도의 메카인 영등포역 가까운 동네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철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차를 운전하여 수려한 산하를 누비다가 철도노조의 간부를 맡아 정부의 철도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철도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바꾸게 된다는 점에서 공부는 역시 좋은 것입니다. 철도에 대한 관심이 민영화를 반대하기 위한 논리개발로 시작한 철도공부가 역사로 거슬러 오르게 된 것은 작가에게는 행운이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그 계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철도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이후 철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것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기관차, 선로, 역, 철도원뿐만 아니라 사랑과 이별, 전쟁, 역사, 예술에 이르기까지 철도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여행은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16쪽)’ 행운은 행운을 부르는 법, 2012년 겨울 작가는 우연히 <프레시안>기자와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격주 간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정 칼럼은 시작은 쉽지만, 곧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연재기간은 따로 적지 않았지만, 책의 부피로 보면 몇 년은 조이 해왔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읽어내야 하는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자료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책들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는 모두 7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철도가 탄생하기까지 밑거름이 되었던 지식, 그러니까 앞서 잠깐 언급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건설현장, 고대 그리스의 철도 디올코스라인, 중세 오스트리아의 라이스추크 철도, 그리고 로마의 위대한 길 아피아 가도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이 앎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정리합니다. 2부에서는 철도시대의 문을 열수 있었던 행운의 사나이 조지 스티븐슨의 성공신화를 뒷받침해준 몇 가지 행운에 가까운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왜 프랑스가 아니고 영국이었는지도 말입니다. 3부에서는 철도가 바꾼 근대의 풍경을 담았는데, 옛 미술작품에 담긴 철도라든가, 철도시간이 탄생하게 된 재미있는 상황이나, 대형화된 참사로 탈바꿈하게 된 철도사고 등이 여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4부에서는 미국대륙에, 5부에서는 일본열도에 철도가 건설된 배경을 설명하고, 그 의의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철도역사에 곁들여서 우리나라에 처음 철도를 부설한 일본제국의 시커먼 속셈도 적나라하게 적었습니다. 흔히 쇄국의 껍질에 숨어 퇴화되어가고 있던 대한제국을 문명화시킨 공로를 드러내는 일본제국이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어떻게 벌였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6부에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기간 중에 철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7부에서는 해방 이후 벌어진 철도 파업과 6.25동난 기간 중에 철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요약합니다. 어쩌면 연재를 시작한 배경에는 철도민영화의 허구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슬쩍 드러내 보인다거나 해방 이후의 남한 정부의 난맥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읽히기도 합니다만, 이런 부분에서는 반대논리까지도 같이 소개하여 읽는 이들의 판단에 맡기도록 했더라면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기관차경주대회를 찰스 디킨스의 중계와 칼 마르크스의 해설로 소개한 것도 참신한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선정된 사유는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개의 선로 위에 선 경주용 기관차들이 동시에 달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하나의 선로에서 경주에 나선 기관차들이 한 대씩 달려서 가장 짧은 시간에 주행을 맞춘 기관사를 우승자로 결정했답니다. 저자는 단순히 기록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철도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사회의 분위기를 전한다거나 경쟁자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점 등도 잘 엮어서 들려주기 때문에 왜 당시에 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철도는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결론을 미리 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철도민영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식의 설명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은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끌어올리는데 사용되었는데, 이 무렵 석탄을 선로 위에 올려 이동시킨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은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1802년 리처드 트레비식이 증기차에 대한 특허를 내어 시험운전을 하기도 했지만 실용화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기관차제작에는 성공했지만 빈약한 선로가 거대한 몸집의 기관차에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지 스티븐슨은 선로의 중요성을 깨달아 제대로 된 철로를 깔아 기관차가 달릴 수 있게 했던 것이 성공의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최초의 상업용 철도는 스톡턴과 달링톤 사이에 건설되었고, 본격적인 철도시대를 연 것은 1830년 9월 15일 개통식을 가진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의 철도라고 합니다. 리버풀항 가까이에서는 대도시의 지하에 2km 가까운 터널을 뚫어야 했고, 체트모스의 30㎢늪지대를 가로지르기 위한 선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청어뼈 모양으로 목재를 깔고 돌을 넣어 기초를 다지는 새로운 공법을 적용하였습니다. 영국에서 철도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되어 투기열풍의 중심에 섰습니다. 수십 개의 철도회사가 설립되어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주식을 발행하여 한몫을 챙기려던 투기꾼들은 상투를 쥐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쟁을 통하여 적정한 운임이 결정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경쟁은 초반 출혈경쟁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이내 균형을 찾아가는 법이니까요.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횡단철도는 남북전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철도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던 것인데, 철도망이 잘 갖추어졌던 북군이 군수품조달이나 병력의 이동 등 전략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서부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일었던 골드러시가 한몫을 했고, 유럽을 향하던 동부사람들의 관심이 아시아로도 나누어지면서 동서를 연결할 필요성이 생겨 대륙횡단철도의 부설이 추진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륙횡단철도는 서부에서 만들어진 센트럴 퍼시픽 철도(CP)가 서부 쪽에서 건설을 시작하고, 아이오아주에서 시작하는 동부 쪽 철도는 유니온 퍼시픽철도(UP)가 맡았던 것입니다. 당시 대륙횡단철도건설에는 정부가 부지는 물론 철로주변의 땅을 무상으로 불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두 회사는 한 치라 더 건설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시에라네바다산맥과 로키산맥을 넘어야 하는 CP가 많이 불리했던 것인데, 건설현장이 열악하여 노동자를 구할 수 없었던 것도 커다란 장애였습니다. 이 문제는 중국인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UP의 동부 쪽 철도건설에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공사를 맡았는데, 건설에 참여한 민족들 간의 경쟁도 볼만했다고 합니다. 두 회사가 건설해온 철로는 1865년 5월 10일 유타주 포트몬트리 언덕 위에서 만나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연수 중에 차로 서부를 여행하면서 만난 대륙횡단열차는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평원 위를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장난이 아닌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화차가 몇 량이나 연결되었는지 헤아려보려고 도전했습니다만, 금세 헷갈리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책에서 보니 9~10대의 기관차를 선두와 마지막, 그리고 중간에 적당한 간격으로 끼워서 모두 3백량 정도의 화차로 구성되는 ‘몬스터’라고 부르는 화물열차 운행편이 있다고 합니다. 화차 하나의 길이를 17m로 쳐도 5.3km에 이른다고 하는데, 서울역에서 용산역을 지나 한강다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합니다. 땅덩어리가 크니 화물열차도 장난이 아닌 듯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는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보는 꿈을 가졌습니다만, 일정과 방법을 찾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웬만한 도시는 비행기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데, 굳이 철도여행을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여객수송용 열차운행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폐지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화물열차의 경우는 비행기나 트럭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으므로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사업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예산에만 기대고 있다면 효율적 운영에 소극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899년 7월 인천공장에서 조립해 한국에서 운행된 모갈탱크형 기관차. 이미지 출처: 철도기술백서

일본의 경우도 개항 이후 철도가 선진화를 이끄는 동력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영국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하였기 때문에 초기에 외국자본에 휘둘린 측면이 없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게 된 일본은 조선의 철도부설권을 얻어내기 위하여 별별 수단을 다 썼던 것이고, 조선의 조정이 견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 부설권을 사들이는 무리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건설과정에서 투자비를 넘게 뽑아내는 재주를 보였으니, 아무래도 협상에 약하거나 뒷구멍으로 딴 주머니를 찬 모리배들의 장난에 나라가 멍든 꼴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근대화과정에서 조선철도 부설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어 슬픈 과거지사를 새기게 됩니다. 한 번의 잘못은 저지를 수 있지만, 꼭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현명함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시기에 만주는 우리 백성들에게는 희망이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붙일 땅뙈기도 없는 농민들이 흘러들어 버려진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고, 이곳에서 힘을 길러 조국을 수복시킬 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저자는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이 변화를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초반에 투쟁을 주도하던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뜻을 접은 다음에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불씨를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조직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 만주국 간도특설대에 배치된 조선인들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간도특설대 출신 조선인들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항일무장투쟁세력은 북한에서 자리잡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의 국내 정세나 6.25동란 기간 중에 철도와 기차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공방전 등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의 기록도 있는 듯해서 조만간 찾아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출장이 적지 않은 편인데 대체적으로 열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속버스보다는 철도를 선호하는 것은 쾌적하고 흔들림이 적어 책읽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중요한데, KTX를 이용하면 고속버스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이동이 가능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철도여행이 비행기나 고속버스 등 다른 여행수단과 비교해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비스 개선을 위한 다각적 모색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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