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이 남긴 시사점

[라포르시안] 국내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과 관련해 "모든 암의 조기진단은 절대적으로 유용하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은 지난 2014년 3월 일부 의사들이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를 구성해 의학적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검진 갑상선 초음파 검사의 중단과 이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정책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대한갑상선학회를 중심으로 의사연대 주장에 대한 반박의견이 잇따랐고, 언론을 통해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이 확대 재생산 됐다.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국립암센터와 '갑상선암 검진 제정위원회'를 구성해 1년여의 논의 끝에 갑상선 초음파 검진 권고안을 마련, 2015년 9월 최종적으로 이를 공개했다.

정부가 마련한 권고안의 핵심은 '무증상 성인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갑상선암 검진은 권고하거나 반대할 만한 의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므로 일상적 선별검사로는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의 전개방향과 원인, 시사점을 짚어낸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홍영준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은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간한 학술지 <근거와 가치>에 '한국의 갑상선암 과잉진단, 과잉치료 논란과 그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게재했다. 홍영준 과장은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의 일원이었다.

홍 과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갑상선 초음파 검진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성명서 발표 직후였던 2014년 4월을 기점으로 월별 갑상선암 수술건수가 약 30% 줄어들었다"며 "상황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초음파에 의한 무증상 성인의 갑상선 건강검진이 유용할 것이란 믿음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과 예후가 매우 좋은 갑상선 미세암을 조기에 수술로 제거하는 건 오히려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의료계 일부의 강력한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널리 소개되면서 일반인들의 의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5년 주요수술통계연보'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5년 주요수술통계연보'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따르면 갑상선수술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수술건수가 81명에서 2015년에는 54명으로 감소했다.

갑상선수술의 감소세는 의료계 내부에서 과잉진단 우려가 제기된 2014년부터 뚜렷해졌다. 연도별로 갑상선수술 건수를 보면 2010년 4만847건에서 2011년 4만4,234건, 2012년 5만1,513건, 2013년 4만8,948건, 2014년 3만7,162건, 2015년 2만8,214건으로 집계됐다.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을 통해 '모든 암의 조기진단이 절대적으로 유용하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조기진단의 유익성에 관한 도그마에 빠져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문제를 방치하게끔 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인식이다.   

홍 과장은 "객관적인 사실과 근거들에 의해 진리를 찾아가는 과학계에서도 뿌리 깊은 도그마가 자리잡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암이든 그것을 일찍 발견할수록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믿음이 대표적"이라며 "바로 이런 도그마로부터 암의 과잉진단과 과잉치료 문제가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갑상선암처럼 발생률은 급증하는데 사망률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경우 과잉진단이 존재함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며 "또한 과잉진단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이내 과잉치료로 이어져 환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은 명백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내 갑상선암 관련 과잉진단 논의 과정에서 ‘검사를 안 하거나 적게 하다가 심각한 진단을 놓치는 경우’처럼 특정 개인이 겪게 될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과잉진단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켜 왔다는 점이다. 

홍 과장은 "초음파를 이용한 무증상 성인의 갑상선암 검진을 반대하는 의사들을 반박하는 쪽은 언제나 개별적인 사례, 즉 ‘검진을 제때 안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 위중해진 환자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며 "그러나 그런 사례를 줄인다는 명분에 매달려 엄청난 과잉진단의 위험성을 간과한다면 그 또한 전문가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근거중심의 갑상선암 임상진료지침 개발과 보급을 제시했다.

다만 국내 건강보험제도와 의료환경 등을 고려할 때 자체적으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해 보급하는 데 제한점이 많기 때문에 외국에서 개발된 기존 진료지침을 들여와 그 질을 평가한 뒤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견에 주목했다.

홍 과장은 "미국 갑상선학회(ATA)가 마련한 갑상선 결절 및 분화갑상선암환자에 대한 진료 가이드라인이 국내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이를 국내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평가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특정 권고만을 수용한다거나 혹은 특정 권고를 수정하거나 하는 방법을 채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갑상선암 임상진료지침의 개발·보급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이 바로 갑상선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다.

환자가 조기 검진, 조기 치료의 유용성에 대한 정보는 물론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한 뒤에 환자 스스로 신중하게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할 때 갑상선암 과잉진단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의료환경을 고려할 때 갑상선암 관련 검진이나 수술의 경우 제한된 진료시간 내에서의 설명만으론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홍 과장은 "전문가들이 모두 합의한 임상진료지침이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실제 진료 과정에서는 그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각종 옵션에 대해 의료진은 치우침 없는 정보들을 환자들에게 제공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받게 될 의료서비스의 장단점 및 득과 실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는 것이 환자가 자신의 선택권을 보장받는 중요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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