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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의대서 배운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 전공의 과정서 소멸”박용익(가톨릭대 ELP(Ethical Leader Path) 초빙 교수,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

가톨릭대 박용익 교수(일반언어학)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을 10년 가까이 연구해 온 언어학자다. 그는 한국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뮌스터대로 건너가 대화분석학을 공부했다. 대화분석은 대화자 간의 상호행위에 의해 이뤄지는 발언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대화분석학의 범위는 일반대화에서부터 법정, 진료, 교실 등 제도적 장면으로 확대돼 왔다.

박 교수는 지난 2002년 의료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국내 의사들과 만나게 되면서 진료 현장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설립 원년 멤버이기도 한 그는 의사와 환자가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나눔으로써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최근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기관의 조직 구성원 간의 대화분석 연구에 심취해 있는 그를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언어학자가 10년 가까이 의료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다고 들었을 때 상당히 의아했다. 의료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된 배경은.

"우선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문학적 연구 결과를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었고,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동시대인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었다. 언어학의 다양한 연구 분야 가운데 주 전공이 대화분석 연구인데, 대화분석 연구는 실제로 수행된 대화를 자료로 하는 실증적인 학문이다. 그래서 이론적이고 방법론적인 연구 결과를 실제의 자료에 대입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의 실제적 활용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단국대의대 박일환 교수와의 만남이 이뤄졌고, 박 교수를 통해 의료계에서도 의료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됐다. 때마침 한국연구재단에서도 인문학 연구의 확산을 위한 방안으로 학제간 융합 연구를 적극 지원했고, 의료커뮤니케이션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다."

- 의료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처음으로 연구한 주제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정의부터 분명히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의료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가 매우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유형의 의사소통 행위를 포괄하는 집합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커뮤니케이션의 개념 정의와 유형학에 대한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 그 이후 ‘나쁜 소식 전하기’와 ‘병력대화’ 그리고 의사국시 실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의 CPX에서 대화에 대한 대화분석적 정밀 평가 등의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병력대화와 나쁜 소식 전하기에 관한 연구는 2011년에 ‘환자중심적 의료커뮤니케이션’이라는 책으로 출판한 바 있다."

-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의료계에서는 기존의 권위적인 의료 관행이 환자들에게나 의료인 본인들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라는 데 대한 자성이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관행을 고치고자 하는 의식 있는 의료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또한 ‘환자권리장전’이나 ‘의료인의 윤리지침’ 등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환자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환자 중심적인 의료에서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의 발견이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생의학적 관점에서는 환자의 신체적인 고통만이 의료의 대상이 됐지만, 사회심리적인 의료 측면에서는 환자의 심리적인 고통과 질병의 사회심리적인 원인도 의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심리적인 의료에 대한 탐구는 오로지 의사소통만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의료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 실제로 의사와 환자 간 대화를 분석하면서 느낀 점은.

"일부 의사들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환자 중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의료인들은 아직까지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의료인 중심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예로 예비 의사들의 모의 CPX 등을 분석해보니 ‘자상하고 편안하며 친근감이 느껴졌다’, ‘충분히 들어주었다’, ‘질병 이외에 나의 삶 자체에도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었다’ 등의 항목에서 낮은 점수가 나왔다. 의사들도 환자를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의사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치료 효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선순환구조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의과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의 수준을 평가한다면.

"의료인들이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심지어 국가고시에서 커뮤니케이션 실기수행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 볼 때 놀라운 변화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대생들이 환자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과 국가고시에서의 평가 시스템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도입 됐고, 수준 높은 의료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자들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그 교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대생들의 CPX와 그에 대비한 모의시험에서 정교한 평가와 피드백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하고 있는 동료 의대 교수들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더라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기존의 의사소통 방식을 접하게 됨으로써 교육의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즉,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의 성패는 학교 교육 뿐만 아니라 임상에서도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는 데 달렸다. 이를 위해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임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과 관련 연구가 발전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교육자와 연구자의 인력풀이 확충돼야 한다. 의대에서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자는 대부분 의대 교수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의료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그것의 토대가 되는 (인간)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지금 보다 더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수백 번 조언하는 것보다 의료인들이 실제 현장에서 수행하고 있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실태와 문제점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최근에는 어떤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설명동의(informed consent)에 대한 대화분석적 연구’를 제주대의대 심기범 교수, 중앙대의대 임인석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윤리적이고 법률적인 규정을 넘어 어떻게 하면 환자중심적이고 효율적인 설명동의 대화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다. 또한 서울대 강창우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질병체험 이야기 데이터베이스 구축’ 연구 프로젝트와 고려대 박성철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의료기관의 조직 커뮤니케이션 연구’ 프로젝트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 자살시도자들이 말하는 자살시도에 대한 질적연구’도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의사와 환자의 의료커뮤니케이션의 확장판인 의료인과 환자의 의료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 의료커뮤니케이션 연구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구 인력풀이 적다 보니 심층적이고 다양한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할 동료가 많지 않다는 점이 늘 아쉽다. 연구 인력풀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 연구 분야에 인문학자들을 동참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자들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의료계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해야 한다. 아직까지 의대에서 이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 의료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의료인들이 환자를 대할 때의 태도와 가치관이다. 그 이유는 대화술(skill)보다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몸에서 나오는 말, 즉 비언어적(nonverbal)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는 의료인으로서의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환자에 대한 관점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환자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환자를 의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닌 협력자로서 배려하고 존중한다면 대화의 기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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