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여기는 병원이다. 병원은 돈이 없어도 와서 진료해달라고 하면 진료해야 한다. 의료법상 환자를 거부하지 못한다". 얼마전 어느 병원장이 신문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다. 그 병원은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술을 펼쳐 온 요셉의원 같은 곳도 아니다. 서울 강남에서, 그것도 최상위 1%에 속하는 VIP만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현행 의료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유사 영리병원'이란 말을 듣고 있는 병원에서 의료법을 들먹이며 그런 말을 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병의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경우 의료쇼핑과 같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심각해 질 수 있다'거나 '무상의료에 필요한 재원소요규모가 최대 5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세금으로 떠안을 수 밖에 없다. 무상의료에 반대한다'고 하는 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12년 10월 24일 제18대 대통령선거 각 예비후보자의 10대 공약과 경제․민생 분야 등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예비후보자의 입장을 선관위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다. 당시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박근혜 후보의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입장 중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12년 10월 24일 제18대 대통령선거 각 예비후보자의 10대 공약과 경제․민생 분야 등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예비후보자의 입장을 선관위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다. 당시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박근혜 후보의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입장 중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측면을 고려할 수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가 중요하다. 지난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가 '복지재정 확대를 통한 무상의료 실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의견이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18대 대통령선거 각 예비후보자의 경제․민생 분야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달받아 공개했다. 거기에 박 후보는 '무상의료 실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저렇게 답변했다. 다른 대선후보들은 무상의료 실시에 '찬성' 혹은 '조건부 찬성' 입장이었다. 박근혜 후보만 무성의료 실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무상의료 실시 반대의 이유로 제시한 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상의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국민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짜로 병의원을 이용하면 의료쇼핑 같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이런 입장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였던 최순실 씨는 사실상 오래 전부터 무상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최순실 씨와 그의 딸은 강남의 단골병원에서 공짜료 비싼 비급여 진료를 받았고, 박 대통령도 차움의원에서 미용 목적의 시술을 무료로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차움의원을 이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물론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 앞에서는 무상의료는 의료쇼핑 같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해놓고, 뒤로는 무상의료 혜택을 꼼꼼하게 누리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비아그라를 비롯해 '태반주사', '백옥주사'로 불리는 각종 영양·미용 주사제를 대량으로 구매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연히 그런 의약품을 구매하는 데 들어간 돈은 전부 국민 세금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무상의료를 실시하려면 국민의 세금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대통령 취임 전부터 공짜로 피부미용 시술을 받았고, 취임 후에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피부미용 시술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적어도 무상의료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과 위선이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최근 수년 간 당기흑자를 내면서 누적된 흑자가 20조원을 넘는다. 당기적자로 해마다 재정위기를 겪던 건보재정이 20조원이 넘는 누적흑자를 쌓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장기화된 겸기 침체로 국민의 의료서비스 이용이 줄면서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요양급여비 지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으로 인해 건강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중증질환 진료에 드는 '재난적 의료비' 때문에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과 국정농단의 주역인 비선 실세 일가는 무상의료를 누렸다니 '우리가 이러려고 세금과 건강보험료 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최근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경제 규모 및 국민피해액을 분석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안만 놓고 봤을 때 국민피해액 규모가 35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5조원이면 월급여 200만원 수준의 공공일자리를 연간 150만개, 월급여 100만원의 노인공공일자리를 연간 300만개 창출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특히 35조원이면 전국 고교·대학 무상교육이나 전국민 무상의료를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정말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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