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입에 담기 민망한 건 약이 아니라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행태

[라포르시안] 20세기 성(性)혁명을 이끈 두 가지 약이 있다. 

첫 번째로 성혁명을 이끈 건 1950년 등장한 '피임약'으로, 성이 곧 '생식'이라는 개념을 깨트렸다. 두 번째로 성혁명을 이끈 게 바로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명사가 된 '비아그라(Viagra)'다.

피임약이 성과 생식을 분리함으로써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강화했다면 비아그라는 남성의 몸을 통제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성문화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비아그라를 '기적의 푸른 알약'이란 칭하기도 한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비아그라는 처음부터 발기부전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게 아니다. 

당시 화이자는 협심증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었다.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동맥이 수축해 가슴에 통증이 생기는 협심증의 치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혈관확장 작용을 하는 '실데나필'이란 물질에 주목하고 연구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연산실데나필'이라는 시제품을 개발했지만 협심증 치료 효과를 확인하지 못해 크게 낙담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시제품을 복용한 노년의 남성환자한테서 음경의 발기효과가 현저하게 향상되는 효과를 발견했다. '유레카!'. 

그렇게 해서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1998년 출시됐다.

비아그라는 한국의 남성문화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비아그라의 등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왔는지는 그런 현상에 대한 논문까지 작성됐다는 점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채수홍 교수는 지난 2005년 5월 열린 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서 '비아그라가 한국의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미친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채 교수는 이 논문을 통해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꿔 놓았다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비아그라의 성공은 자연스런 노화현상이나 치료가 어려운 장애로 취급되던 발기부전이 치료해야하고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되게끔 만들었다"며 "발기부전을 치료할 손쉬운 수단이 생기면서 의사의 인식이 전환되고 그 결과 일반인의 발기부전에 대한 통념이 바뀌고 있다"고 서술했다.

또한 여러 가지 성격의 성 담론을 공론화하고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주책을 떠는 것으로 치부돼 음성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노인의 성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애마부인(愛馬夫人)에 대한 환상과 변강쇠 콤플렉스에 기초해 만연하던 각종 보양식문화도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며 "비아그라는 한국남성의 성과 성문화를 표면에 드러내는 리트머스 용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를 변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비아그라는 소아환자에도 처방됐다

비아그라가 처음부터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된 게 아니었던 것처럼, 비아그라는 또한 다른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우선 '폐동맥 고혈압'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 100만명 중 50명꼴로 앓고 있는 희귀난치질환인 폐동맥 고혈압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 상승으로 호흡곤란, 전신무력감, 현기증 등이 증상을 초래한다. 심한 경우 실신하거나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국내에는 수년 전까지 폐동맥 고혈압 치료를 위해 출시된 약이 없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제약업계의 속성상 많은 비용이 드는 신약 연구개발에 뛰어들 때는 당연히 시장성을 볼 수밖에 없다. 환자수가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수입하는데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다.

비아그라가 국내에 출시되자 일부 의사들이 이 약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이 음경의 혈관뿐만 아니라 폐동맥을 확장시킨다는 연구결과에 착안해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에게 처방을 했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은 비아그라 고용량(100mg)을 처방받은 후 이를 5조각으로 쪼개 나눠서 복용했다. 폐동맥 고혈압을 앓는 소아환자가 비아그라를 처방받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012년 국내 한 제약사가 적정 용량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를 출시하면서 환자들이 이런 불편함을 덜게 됐다.

이밖에 비아그라가 체중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양성 전립선 비대증을 개선하는데도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또 고산증에도 효과를 보였다.

최근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할 때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구매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의료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고산병에 비아그라 복용이 효과가 있다 없다를 놓고 상반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비아그라가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는 건 기존의 관련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높은 지대에서 저산소 상태에 노출됐을 때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해 호흡곤란과 두통 같은 증상을 초래한다. 폐동맥 고혈압에 비아그라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적정 용량의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고산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권장되는 약물 투약량' 가이드라인을 통해 실데나필 50mg을 8시간마다 복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권장하는 약물은 '아세타졸아미드(Acetazolamide)이다.

CDC 가이드라인은 아세타졸아미드를 하루에 두번 12시간 간격으로 125mg씩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체중이 100kg 이상인 성인은 250mg 용량을 하루에 두번 복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타다라필(Tadalafil) 등을 고산병 치료와 예방 약물로 권장한다.

CDC가 우선적으로 권장하는 고산병 치료 약물인 아세타졸아미드 성분의 약품이 국내에도 있다. 한림제약이 공급하는 '아세타졸정'이란 제품이다. 

그러나 아세타졸정 역시 고산병 치료로 적응증을 승인받은 게 아니다. 승인된 적응증 중에 '폐기종에서의 호흡성 산증의 개선'이 포함돼 있어 고산병 예방 및 치료제로 처방된다.

비아그라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약제가 아니다

어쨌든 비아그라는 의도치 않게 개발됐지만 1998년 첫 발매된 이후 아주 성실하게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 심지어 다른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한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아그라'를 대하는 우리사회의 자세에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함이 보인다.

청와대가 구입한 약품 목록에 비아그라가 포함된 것과 관련해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한 내용을 보면 뭔가 입에 담기 민망한 의약품처럼 취급한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구입목록에는 입에 담기 민망한 남성치료제까지 포함되어 있다니 이 막장드라마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라는 표현을 썼다.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지난 23일 '앵커브리핑'을 통해 "어제 오늘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약제의 이름까지 등장하는 2016년의 한국사회에 부끄럽고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아니던가"라고 말했다.

비아그라는 그 적응증에 맞는 환자에게 처방되고. 적정용량을 복용하면 기대한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의약품이다. 입에 담기 민망한 치료제가 아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건 청와대와 대통령을 둘러싸고 벌어진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이다. 비아그라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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