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세계건강증진대회 참석 계기로 보건산업 해외시장 진출 기반 다졌다고 홍보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9th Global Conference on Health Promotion)’에서 다룰 의제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작한 홍보 동영상 화면 갈무리.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9th Global Conference on Health Promotion)’에서 다룰 의제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작한 홍보 동영상 화면 갈무리.

[라포르시안]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중국 위생계획위원회 주관으로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9th Global Conference on Health Promotion)’가 열렸다.

세계건강증진대회는 지난 1986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 제1차 세계건강증진대회에서는 건강증진의 정의, 건강증진활동의 3대 원칙과 5대 활동전략을 담은 '오타와 헌장(Ottawa charter)'을 채택했다.

오타와 헌장은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을 개인의 생활개선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적 환경의 개선까지 포함토록 규정했다. 건강증진의 목표를 건강 형평성을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를 향해 건강 형평성 향상을 위한 공공정책을 수립할 것을 제시했다.

지난 2013년 열린 제8차 세계건강증진대회에서는 ‘건강을 모든 정책의 목표로(Health in All Policy)' 삼자는 '헬싱키 성명(Helsinki Statement )'을 채택했다. 헬싱키 성명은 '건강은 기본적인 인권이며 건강평등은 사회정의의 표상'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공공정책 부문에서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을 피할 것을 촉구했다.

오타와 헌장과 헬싱키 성명이 담고 있는 내용에서 보듯이 세계건강증진대회가 추구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확장하고, 소득이나 거주하는 지역에 상관없이 건강 형평성을 달성하도록 각국 정부가 노력하고 행동하자는 것이다.

이번에 열린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도 다를 바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는 향후 15년 간 글로벌 건강증진을 위한 주요 전략이 포함된 ‘상하이 선언문’을 채택했다.

상하이 선언문에는 건강 증진을 위해 공공정책과 입법을 통한 건강 보호, 건강에 위해를 주는 상품 규제 및 과세, 건강 및 복지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가능토록 하는 재정 정책의 이행 등을 강조했다. 보편적인 건강보장의 중요성에 대한 당부도 담았다. <WHO 홈페이지 '상하이 선언' 내용 설명 바로 가기, '상하이 선언' 전문 바로 가기>

복지부는 22일 정진엽 장관이 제9차 WHO 세계건강증진대회에 참석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복지부의 보도자료 내용이 기가 막히다.

복지부 보도자료는 정진엽 장관이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를 계기로 중국 보건산업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바로 가기>

보건복지부가 11월 22일자로 배포한 보도자료 중 일부. 전체 5장 분량의 대부분이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 기간 중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의 시장으로 한국 보건의료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보건복지부가 11월 22일자로 배포한 보도자료 중 일부. 전체 5장 분량의 대부분이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 기간 중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의 시장으로 한국 보건의료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진엽 장관은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 참석 기간 동안 의료기기, 제약, 화장품 등 한국 보건산업의 대중국 진출 현황과 보건상품 수출 동향을 점검하고 현지 진출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지난 21일에는 15년 전부터 한국 의료기기를 사용해 온 상하이 소재 ‘복단대학부속 중산병원’을 방문해 한국 의료기기 및 제약산업의 우수성을 홍보했다고 한다.

같은 날 저녁에는 중국 현지에 진출한 화장품, 의료기기, 제약, 병원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산업 진출 동향을 파악하고 현장의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튀니지 및 아르헨티나 보건부 장관과 면담을 통해 양국 간 보건의료 협력 체계도 강화했다.

복지부는 "아르헨티나와는 보건의료정책, e-health, 제약·의료기기·화장품 등 보건의료분야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국내 제약사들의 아르헨티나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한국의약품 등록이 간소화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총 5장 분량의 복지부 보도자료에서 세계건강증진대회 논의 결과나 의미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진엽 장관은 11월 21일 세계건강증진대회 개막식과 리빈 중국 위생계획위원회 주임이 개최하는 장관급 공식 오찬에 참석하여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보건영역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같이 하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15년간 세계 건강증진을 위한 주요 전략들이 포함된 ‘상하이 선언문’을 채택하였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말 그대로 세계 각국의 건강증진 활동 경험을 공유하고, 건강 형평성 성취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놓고 보도자료를 통해서는 국내 보건산업의 해외진출 확대와 관련된 성과(?)를 홍보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더욱이 복지부가 밝혔듯이 제9차 세계건강증진대회에서는 작년 9월 열린 유엔 정상회의에서 확정한 '차세대 새천년개발목표(Post-2015)'에 따른 주요 실행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유엔이 확정한 차세대 새천년개발목표는 ▲모든 형태의 빈곤종식 ▲건강한 삶의 보장과 모든 세대에 복지 증진 ▲성평등 및 모든 여성과 여아의 역량강화 ▲국내적 또는 국가 간 불평등 경감 ▲기후변화와 대응 등 17개 어젠다를 담고 있다.

최소한 이번 국제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고, 이를 위해서 한국 정부가 어떤 공공정책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라도 제시하는 게 맞다. 그런 내용은 없고, 보건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복지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홍보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세계건강증진대회 참석을 통해 한국 보건의료산업의 대 중국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아르헨티나 제약·의료기기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성과를 냈다고 홍보할 만큼 복지부의 정책 추진이 경제논리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음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근혜정부 들어서 가뜩이나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보건의료산업부'라는 비아냥을 샀는데, 이 정도 인식이라면 보건의료산업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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