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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무전유죄, 그리고 흑인유죄…미국의 뒤틀린 사법제도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 브라이언 스티븐슨 지음 /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오래 전에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교도관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끔찍한 범죄의 현장을 보면 사형제도를 존속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형집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분도 있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체포된 경우가 아니라면 사형수의 범죄사실이 얼마나 완벽하게 입증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생명을 끊는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쓴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비록 미국의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만, 사형제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기회였습니다.
 
스티븐슨은 뉴욕 대학 로스쿨 교수이자, 비영리 법률 사무소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의 상임 이사입니다. 1959년 델라웨어 주 밀턴에서 태어난 스티븐슨은 1983년 하버드 로스쿨 재학시절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남부 재소자 변호 위원회(SPDC)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도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형수를 만난 뒤 형사 사법 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애틀란타로 가는 비행기에서 SPDC의 책임자 스티브 브라이트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졸업 후 SPDC에서 변호사업무를 시작하였고, 4년 뒤인 1989년 앨라배마 주에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를 열었습니다. 빈곤층, 흑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무료 변호를 한 것입니다. “브라이언, 사형이란 <돈 없는 사람이 받는 처벌>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사형수를 도울 수 없어요”라는 브라이트의 말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의 첫 번째 저서입니다. 백인 여성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 흑인 월터 맥밀리언의 사건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례를 덧붙였습니다. 엄마를 폭행하는 동거남을 쏘아 죽인 14살 소년이 사형을 선고받기에 이른 사건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던 상이군인이 짝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일념으로 설치한 폭약이 터지는 바람에 그녀의 조카가 죽는 사고로 역시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 등이 더해졌습니다. 월터 사건은 남부지역 특유의 인종차별적 인식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사법제도의 맹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티븐슨이 의뢰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사형을 면하게 하거나 종신형을 감형받을 수 있도록 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였거나 제도의 틀을 넘지 못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사례들도 인용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듭니다.

월터 맥밀리언을 변호하면서 스티빈슨은 ‘가난하고 결백한 사람보다 부유하고 유죄인 사람을 대우하기만 하는 형사사법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 즉 “자비란 희망에 기초해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해질 때 의롭다는 사실”을 월터로부터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Just Mercy"라고 정했을 것입니다. 자비는 누군가에게 힘을 불어넣고, 누군가를 자유롭게 해주며, 누군가를 변화시킨다고 저자는 믿습니다. 

월터 맥밀리언 사건을 소개하는 첫 장의 제목은 ‘앵무새 죽이기’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앵무새 죽이기>로 유명한 여성 작가 하퍼 리의 고향 앨라배마 먼로빌은 이 사건의 주인공 월터 맥라이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먼로빌은 1960년대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앵무새 죽이기>를 지역홍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백인여성을 강간했다는 무고한 죄목으로 기소된 흑인남성을 용감하게 변호하는 백인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와 그의 딸 스카웃이 남부 특유의 인종적, 사법적 현실에 맞서는 모습에 많은 미국인들이 열광했던 것입니다. 그런 먼로빌에서 역시 무고한 월터 맥밀리언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1980년대의 후반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먼로빌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던가 봅니다.

1986년 11월 1일 늦은 아침, 열여덟의 백인 여대생 론다 모리슨이 먼로빌의 한 세탁소 바닥에서 세발의 총알을 맞고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월터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종일 ‘피시 프라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물론 많은 동네 사람들도 월터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터가 모리슨 살인사건의 혐의를 받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수사관이 무모할 정도의 사건 끼워 맞추기를 시도한 까닭입니다. 물론 월터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있습니다. 우연히 만난 백인 여성 캐런 켈리의 유혹에 빠졌던 것입니다. 월터와 켈리의 밀애는 가족들에게 알려졌고, 월터는 켈리 부부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증인으로 소환되어 ‘친구’사이였음을 시인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구체적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먼로빌의 백인주민들로부터 월터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앨라배마주는 21세기까지도 <이인종 간 결혼 금지법>이 존속될 정도로 보수적인 곳입니다.
 
문제는 켈리가 마약에 손을 댔고, 새로 사귄 랠프 마이어스라는 백인 남자는 마약 중독을 넘어 심각한 범죄자였던 것입니다. 켈리와 마이어스는 살인사건에 휘말렸고, 수사과정에서 마이어스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사관들이 모리슨사건 때문에 몰리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마이어스는 월터와 켈리가 모리슨 사건에 가담했다고 주장했고, 수사관들의 주도로 사건을 짜 맞추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월터의 국선변호인은 월터의 결백을 입증할 증거를 재판부에 제시하는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판부 역시 사건을 조기에 종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사법제도의 독특한 구조의 하나인 배심원이 무작위 추첨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미국의 남부지역의 강력사건에서 소수민족이 관련된 강력사건의 배심원들은 대부분 백인들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지역주민 비례로 구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월터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사형판결이 내려지고 월터는 사형수가 되어 형집행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인데, 마침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슨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앨라배마주가 얼마나 보수적인가 하는 것은 스티븐슨이 월터의 변호사로 선임되자마자, 담당판사로부터 이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는 설교조의 훈계를 들어야 했고, 심지어는 사무실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반면 흑인사회에서는 ‘자네는 정의를 위하여 북을 치고 있네’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검사측이 확보한 증인의 증언을 토대로 사형이 선고된 월터 사건의 항소과정에서 검사측이 내세웠던 증인이 증언을 번복하였음에도 항소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검사의 직권남용, 인종차별적인 배심원단 선정, 부적절한 재판지 변경, 심지어는 배심원단이 종신형 평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이를 번복하여 사형을 판결한 점까지도 모두 적법하였다는 것입니다. 스티븐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월터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를 꾸준하게 모아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최초의 위증으로 월터를 함정에 빠트린 마이어스의 번복증언과 켈리의 증언도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판결을 앞두고 CBS의 인기 프로그램 「60분」에서 월터의 사건을 심층취재하여 보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것도 도움이 되었던지 월터는 무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판결을 앞두고 최후변론에서 스티븐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억울하게 기소된 이 남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그가 저지르지도 않은 짓을 이유로 사형수 수감 건물에 보내기는 너무 쉬웠습니다. 반면 그의 결백을 입증하고 다시 자유를 찾아 주기까지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앨라배마 주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 있습니다.(339쪽)” 그렇습니다. 충분하지 않는 증거를 토대로 유죄라고 판단하기는 쉽지만, 한번 내린 판결을 뒤집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판단도 신중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충분한 사유가 있다면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월터의 사회복귀과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역사회의 반감을 극복하는 문제와 생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월터는 감옥에서 나온 초반에는 활기를 보였지만 점차 위축되어 갔고, 종국에는 치매증세를 보여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두고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인내심과 잘못된 결정과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을 보여준 월터의 의연한 모습은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뿐더러 이런 이들을 도와주는 스티븐슨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충격적인 장면은 사형수를 전기의자에 앉혀 처형하는 장면의 묘사입니다. 1,900볼트의 전기 충격을 30초간 가하는 동안 전극을 부착한 부위에서 화염이 일고 불꽃이 튀었으며 살과 옷이 타면서 내는 강렬한 악취가 증인실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의사가 수인을 검사했을 때 아직 사망하지 않은 상태였고, 따라서 전기충격을 반복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변호인은 주지사와 통화를 하고 있던 교도소장에게 형집행을 더 이상 진행하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되었습니다. 잠시 뒤 다시 30초간의 전기충격이 가해졌고 그때서야 수인은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실 도축장에서도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경우는 더욱 분명한 지침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단번에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충분한 강도의 충격을 가할 것이며, 한 번의 시도에 죽음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다시 시도를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Book소리에서 소개드렸던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에서도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 의사가 입회하여 사형수의 죽음을 확인하는 일은 분명 생각해볼 일입니다. 필자의 경우 전공 때문에 주검을 대할 기회도 많았고, 노환이나 질병으로 죽음을 맞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자살이나 사형의 집행과 같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시키는 끔찍한 순간을 지켜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자리라면 사양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신질환을 빌미로 처벌을 빠져나가려는 질 나쁜 범죄자와 진짜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환자를 제대로 구별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학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가적 양심에 따라 판단을 하여 사법적 판단이 올바르게 내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문제 역시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에서 논의된 바가 있습니다.

사형수 월터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면서 저자는 미국 사회가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경향이 여전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범죄자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분노가 낳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형제도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누군가가 마땅히 죽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과연 우리는 누군가를 죽일 자격이 있는가?(471쪽)’라고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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