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신약 접근성 OECD국가 중 가장 낮아…까다로운 급여기준 탓 대체요법 의존하는 경우도 많아

[라포르시안] 지난 17일 대한암학회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암 환자와 그 가족의 경제적 고통 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항암 신약에 대한 접근성 강화와 보험등재 기간 단축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성일종 의원(새누리당)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인한 가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 별도의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제발표를 맡은 오승택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국민 406명을 상대로 '자신에게 발생할까 걱정하는 질환'을 물은 결과 암이 13.6%로 가장 많았다"면서 "이들 중 36.7%가 암 발생을 걱정하는 이유로 '의료비 부담'을 꼽았다"고 말했다. 

암 환자 역시 '현재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경제적 요인(37%)을 선택했다. <관련 기사: '국민 걱정 질환' 1위는 암…이유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경제적 고통의 원인으로는 항암 신약의 접근성 제한으로 인한 비급여 의약품 사용에 따른 비용과 함께 치료제로 검증이 부족한 보완 대체요법·민간요법과 같은 비과학적 요법에 지급하는 비용부담 등을 꼽았다. 

국립암센터가 2009년 발표한 암 환자 평균 치료비용은 ▲간암 6,622만원 ▲췌장암 6,371만원 ▲폐암 4,657만원 ▲담낭암 4,254만원 ▲대장암 2,685만원 ▲위암 2,352만원 ▲유방암 1,768만원 순이다. 

오 교수는 "암 치료에 2,877만원을 썼다는 한 환자는 총비용의 59%가 항암제값이라고 했다. 문제는 암 환자의 70%가 비급여 치료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암 치료의 보장성 문제를 직접 원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혁신적이거나 의학적 요구도가 높아 보험 적용이 시급한 항암신약에 대한 접근성에서 한국은 OECD 20개국 가운데 17위로 나타났다. 

항암 신약이 보험에 등재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평균 601일로 최하위였다. OECD 국가들은 짧게는 6개월 미만에서 12개월까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항암신약의 보험 급여율은 29%로 다른 질병의 신약 급여율(67%)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암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대비 정부 지원도 OECD 평균(19%)에서 한참 미달한 9%에 불과했다. 

오 교수는 "이런 지표들을 토대로 볼 때 암 환자의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려면 항암 신약에 대한 접근성 강화와 보험등재 기간 단축, 항암제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정부와 의료진은 항상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여 전환 해 놓고 전문가 의견 무시한 채 생색만 내"

까다로운 급여기준도 문제로 지목됐다. 

김태유 서울대 암병원 교수는 "의사들도 급여기준을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다. 유방암 치료에 쓰는 '허셉틴'의 경우 외국에서는 모든 치료과정에 다 쓸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1차 치료제로만 인정하고 있다. 급여를 해줬으면 전문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맞춰야 하는데 생색만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까다로운 급여기준 등으로 보험이 안 돼서 대체요법에 의존하거나 해외로 나가 치료받는 환자도 있다. 또 국가가 보장해주지 않으니 실손보험에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원인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보험자 관점에서 약제비 절감을 위한 통제시스템이라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암 환자 입장에서 발표에 나선 정인철 한국혈액암협회 국장은 저부담-저급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국장은 "암 환자들이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치료받도록 하려면 저부담-저급여의 후진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부담을 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항암제에 대한 정보 제공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현재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산정특례(본인부담 5%)와 본인부담 상한제는 모두 건강보험 진료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비급여에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며 "암 환자의 비급여 치료비 지원을 위해 건강보험과는 별도로 암 환자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암환자 위한 펀드 조성하는 방안 검토 

복지부도 별도의 펀드 조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고헝우 과장은 "항암제 보험급여 청구액이 연간 8,000억원 정도 되는데 최근에는 항암신약 하나가 들어오면 부담이 1,000~2,000억이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보험료를 인상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생각이 다르고 정부 내부에서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고 과장은 "다만, 항암제와 같이 돈은 많이 들어가고 혜택은 일부에게만 가는 약은 별도의 펀드를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운영 중인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확대하던지 따로 암 환자를 위한 펀드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정책토론회에는 다수의 국회의원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도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축사에서  암 환자의 경제적 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토론회 시작 직전 국회의원들은 본회의를 핑계로 모두 자리를 떴고, 정진엽 장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토론자는 "오늘 자리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안 계신다"면서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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