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 누락자 20% '부모 신념' 때문이란 조사 결과…"집단면역 무임승차하는 이기적 행위"

[라포르시안] 보건당국이 2012년 출생한 어린이가 생후 3년까지 예방접종한 전체 기록(예방접종정보시스템)을 바탕으로 연령별, 백신별, 지역별 예방접종률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우리나라 어린이의 예방접종률이 첫돌 이전은 94.3%, 만 세살 이전은 88.3% 등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결과에서 눈에 띄는 결과는 2012년 출생 이후 접종력이 한 건도 없는 접종누락자 1,870명의 미접종 이유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전국 예방접종률 통계’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접종력이 한 건도 없는 접종누락자의 미접종 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은 해외거주로 인한 미접종(74.0%, 928명)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미접종 사유가 바로 '부모의 신념'(19.2%, 241명)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해외거주나 접종할 시간을 내기 힘든 이유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의도적으로 예방접종을 거부한 사례다.

조사결과를 구체적으로 보면 부모의 신념으로 접종누락자가 된 아동 241명 중 '예방접종 이상반응 우려'로 인해 접종을 기피한 경우가 137명에 달했다. 또 '예방접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70명, '예방접종에 대한 개인적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로 인한 기피가 23명, '예방접종 단순 미시행' 11명 등이었다.

해외에서 일부 부모를 중심으로 자녀들의 예방 접종을 기피하는 '백신 거부' 인식이 국내에서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의 신념에 따른 백신 거부 현상은 '집단면역'을 깨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영유아 시기의 적기·완전접종은 개인은 물론 사회전체로 봐서도 집단면역 형성이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집단면역이란 한 인구집단 중에 특정 감염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 때 그 질환에 대한 전체 인구집단의 저항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건 집단면역 효과를 약화시키면서도 사실상 집단면역에 따른 감염병 예방 효과를 누리는 무임승차를 하는 셈이다.

표 출처: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해 제출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 보고서.
표 출처: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해 제출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 보고서.

실제로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홍역의 산발적인 유행도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소아에서 최초 감염이 발생해 병원, 학교 등지로 2차전파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6월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으로 수행해 제출한 '예방접종 전산등록 누락자 실태 분석 및 관리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부모의 신념으로 백신 거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1998년 영국의 저명한 학술지인 '랜싯'에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이끄는 연구진이 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 동시 예방 백신)과 자폐증의 관련성을 제기한 논문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는 MMR 백신에 대한 우려와 접종 거부가 확산된 바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가 1995~2001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19~35개월 아동의 예방백신 미접종자 수는 최소 인구 10만명당 60명에서 최고 1,12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웨이크필드의 연구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2011년 '영국의학저널(BMJ)'에 게재된 바 있지만 그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백신 부작용을 과도하게 우려해 접종을 거부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작용 우려  등으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가 늘면서 작년 초 홍역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충남대 산학협력단은 이 보고서를 통해 "예방접종에 대해서 비슷한 신념 및 태도를 갖는 보호자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곳에 모여서 사는 경향이 있었다"며 "또한 예방접종을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번 내리고 나면 쉽게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며, 미접종 아동의 보호자 70.9%는 예방접종을 받기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의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단 부모가 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의사들이 그 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며 "필수예방접종 모두를 거부한 아동의 보호자는 예방접종 이상반응에 대해 더 많은 우려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mbc 관련 뉴스화면 갈무리.
mbc 관련 뉴스화면 갈무리.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입니다" 과학적 증거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자극적 음모론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의 신념을 꺾기란 쉽지 않다. 여러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 자폐증과 MMR 백신의 연관성을 제기한 웨이크필드의 연구논문이 조작됐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BMJ가 지난 2012년 "웨이크필드의 논문은 사기"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영국의학저널(BMJ) 'MMR백신과 자폐증에 관한 연구는 정교한 사기' 공식입장문 바로 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여전히 MMR 백신이 자폐증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자녀들의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제약업계와 결탁한 의료계가 웨이크필드의 연구논문이 조작된 것처럼 몰고갔다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시작된 만 12세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궁경부암 국가예방접종사업 역시 과도한 백신 부작용 우려로 접종률이 크게 낮은 편이다. 수년 전부터 자궁경부암 예방접종과 연관성이 없거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해외 백신부작용 사례를 인용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학부모 사이에 예방접종 불안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6~11월 초까지 자궁경부암 무료 예방접종사업에 참여해 접종을 마친 만 12세 여성청소년은 12만9,287명으로, 전체 접종 대상자(2003∼2004년생 46만4,932명)의 약 27.8%에 그쳤다.

보건당국에 신고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를 보면 경미하거나 백신과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은 이상반이 13건이었고, 중중이상반응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둘러싼 부작용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한 번 생긴 의심과 우려를 지우기란 그만큼 우려운 법이다. 

백신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부모들이 느는 것과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예방접종으로 집단면역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80~95% 이상의 예방접종률이 유지되어야만 한다"며 "집단면역의 효과를 얻기 위해 일정 수준의 예방접종률 유지와 향상은 매우 중요한 공중보건 정책적 과제"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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