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기반 자살관리체계 추진…지자체 사업서 효과 미미해
"사회 구조적 문제 외면…고용·복지 등 총체적 문제로 접근해야"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체계'를 비롯해 복지부가 지난 해 발표한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두고 사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오로지 의학적 관점에서만 접근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살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찾지 않고 개인의 정신질환 탓으로 돌리고, 자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의학적 치료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실제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에는 ▲정신보건법상 정신질환자 개념 축소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진 ▲직장·학교 기반 정신건강증진체계 ▲자살예방을 위한 조기개입체계 ▲의학적 치료에 기반한 중독 예방체계 ▲초기 정신질환자 입원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적용 ▲국립정신건강연구원 신설을 비롯한 공공정신보건 인프라 강화 등 대부분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내용이다.이런 가운데 최근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체계'(이하 응급실 자살관리체계)의 밑그림이 나왔다. 복지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의 하나로 제시했던 자살예방을 위한 조기개입체계의 일환이다. 이는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 중 처음으로 이행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22일 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자살관리체계'는 응급실, 사례관리팀, 정신과, 지역정신보건센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자살시도자에 대한 심리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거점 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응급의료기관들과 정신보건센터를 연결해 '자살시도자 관리 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된다.

자살시도자가 응급실에 내원하면 응급의학과에 입원해 응급처치와 신체적 안정을 취한 뒤 사례관리팀에 의뢰하면 사례관리팀은 자살시도자를 평가해 정신건강의학과 의뢰 여부를 결정하고,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이 필요없는 환자는 단기사례로 분류돼 정신보건센터 등 자살예방기관에서 서비스를 받게 된다. 정신질환자로 진단된 정신과적 중증환자는 입원치료 후 입원이 지역정신보건 서비스와 연계된다.

복지부는 '응급실 자살관리체계'에 대한 세부적인 추진계획을 공청회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비슷한 유형의 지자체 자살예방서비스 성과 미미

'응급실 자살관리체계'의 구체적인 모양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몇몇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업을 통해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대전시와 원주시는 이미 이와 유사한 사업을 시행 중이다. 대전시는 작년 9월부터 충남대병원, 을지대병원, 건양대병원, 대전성모병원, 대전선병원 등 지역내 5개 병원과 협약을 통해 '생명사랑 서비스'를, 원주시는 안전도시 손상감시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2009년 3월부터 원주기독병원과 자살예방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정신보건센터-지역의료기관과 연계한 응급실 기반의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 서비스다. 

자살시도자가 응급실에 내원하면 환자 치료와 함께 정신과를 콜하고, 정신과에서 지역정신보건센터에 의뢰하면 바로 해당 전문요원이 방문해 사업설명과 함께 동의서를 받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동의를 거쳐 센터에 모이는 데이터는 자살시도자의 성명, 나이, 성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와 자살시도 동기, 과거 정신과 진료 및 자살시도 히스토리, 환자를 의뢰한 정신과 면담 내용 등이다.

하지만 사업 결과는 당초 목표했던 것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전시가 2012년 9월 7일부터 12월 말까지 4개월간 관할지역 5개구 정신보건센터와 5개 병원을 통해 생명사랑 서비스를 시행한 결과, 실제 서비스 이용에 동의한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대전시가 서비스 시행 전 5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는 자살시도자가 1년에 많게는 100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받은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그나마 원주시는 이보다 나은 편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2009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응급실을 통해 정신보건센터에 의뢰된 자살시도자는 총 919명으로, 이 중 서비스에 동의한 사람은 60%인 554명이다. 나머지 40%는 정신과 진료 및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거부감, 정신과 외적 문제 등의 이유로 동의를 거부했다.  

시에 따르면 응급실에 내원해 센터에 등록된 자살시도자 중 재시도자(3차례 이상 포함)는 919명 중 40명(4.3%)이었고, 동의 후 서비스를 받은 554명 중 자살 재시도자는 19명(3.4%)으로 파악됐다. 총인원 대비 자살 재시도 비율은 0.9%p, 서비스 연계 유무에 따른 자살 재시도율은 2.3%p 차이나는 셈이다. 

정신건강증진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복지부가 마련한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이 '정신과 진료 문턱 낮추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신과 퍼주기 정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자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의학적 치료에만 집중되면서 "자살하는 사람은 우울하고, 우울한 사람이 자살한다"는 식의 인식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정부관계자, 종교계 대표, 교수,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한 원탁회의를 통해 "청소년 자살의 주 원인은 정신장애"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살, 우울증 등 국가·사회적 문제의 해법을 의학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종합대책 중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사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학생 정신건강 선별검사와 비견되면서 이 같은 우려에 힘을 더하고 있다. 대구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정서·행동발달 1~2차 선별검사 결과 주의군으로 분류된 1만5,800여명 중 3분의 1 수준인 5,000여명이 3차 검사를 거부했다. 낙인을 우려해 정신과 병의원 상담 및 치료를 연계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정신건강검진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 효과로 이어진다는 근거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의료윤리학회 최보문 회장(가톨릭의대 정신과학교실)은 "우울증이나 자살 등이 증가하는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의학적 관점으로만 접근해 개선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약을 복용하고 고통을 잊음으로써 사회적 문제는 은폐돼 버리고 사회는 기형적으로 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자살, 우울증 역시 하나의 현상이기도 한 만큼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청소년의 치열한 학업경쟁 및 왕따 문화, 직장인들의 고용불안 및 실업, 가계 부채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직한 사람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치열한 경쟁의 짐을 덜 수 있는 교육시스템 등 고용· 복지 서비스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예방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의 경우 자살문제를 고용 복지와 연계된 총체적인 문제로 접근해 성과를 거뒀다. 

스웨덴은 지난 2008년부터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지역보건소, 지역 실업사무소, 사회복지과 등이 함께 연계해 우울증 등 위험요소에 대처해 왔다. 실직으로 인해 우울한 증상을 보이면 취업, 우울증 치료, 경제적 지원방안 등을 동시에 지원하는 식이다. 물론 보건소를 통한 일반진료 및 정신과적 진료, 상담 등도 수반된다. 그  결과 스웨덴 자살률은 2008년 인구 10만명당 14명 수준에서 2010년 12.1명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고됐다. 

자살율 감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삶의 질과 만족감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결과다.

반면 우리나라는 우울증 치료에만 급급하다. 복지부는 2004년 '자살률 20% 감소'를 목표로 자살 예방 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했지만 2004년 인구 10만명당 23.7명이던 자살률은 2009년 31명으로 오히려 28% 증가했다.

복지부가 자살 예방 1차 5개년 계획 실패를 교훈삼아 발표한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이 기대 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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